뉴욕 펜스테이션에서 뉴저지로

과거 뉴욕 펜실베이니아역(펜스테이션)의 웅장한 외관. 1910년 문을 연 옛 역사 건물은 1960년대 철거됐으며, 현재는 지하역 위로 매디슨 스퀘어 가든이 자리하고 있다. 사진=역사자료/김종배 교수 제공
과거 뉴욕 펜실베이니아역(펜스테이션)의 웅장한 외관. 1910년 문을 연 옛 역사 건물은 1960년대 철거됐으며, 현재는 지하역 위로 매디슨 스퀘어 가든이 자리하고 있다. 사진=역사자료/김종배 교수 제공

미국 여행 10일째, 마지막 일정인 어빌리티즈 엑스포(Abilities Expo) 장애인 보조기기 박람회와 북미재활공학회(RESNA)가 개최되는 뉴저지 컨벤션센터로 가기 위해 호텔을 나섰다.

45번 길 호텔에서 7번가로 나와 세 블록을 내려왔다. 42번 길에서 타임스퀘어를 눈도장만 찍고, 포트 오소리티 버스터미널 역에서 파란색 A라인 지하철을 타고 펜스테이션(펜실베이니아역)에 도착했다.

펜스테이션은 뉴욕 사람들에게 단순한 기차역이 아니다. 타임스퀘어가 빛과 미디어로 도시의 욕망을 투영하는 상징이라면, 펜스테이션은 수십만 명의 일상과 번잡한 삶이 교차하는 도시의 진짜 심장이다.

1910년 개장한 원래의 펜스테이션은 로마의 카라칼라 온천을 모티브로 한 웅장한 보자르(Beaux-Arts) 양식의 대리석 건축물이었다. 철거와 어두운 지하 시대를 거쳐 오늘날 유리 천장의 모이니핸 트레인 홀로 부활하기까지, 뉴욕의 과거와 현재가 살아 숨 쉬는 역사적 랜드마크다.

미국에서 기차를 타는 것은 처음이라 기차표를 끊고 플랫폼을 찾아가는 데 좀 헤맸다. 목적지인 뉴저지 컨벤션센터로 가려면 동북회랑선(Northeast Corridor Line)을 타고 메타천(Metuchen)역에서 내려야 한다.

기차에서 자리를 잡았는데 모자와 정복을 입은 승무원이 들어온다. 승차권을 확인하고 좌석 머리받침대 슬롯에 색깔별 'Seat Check' 종이표를 펀치로 뚫어 꽂아 놓는다.

오잉? 이건 뭐지?

미국 철도산업은 항공기와 자동차의 대중화로 쇠락했지만, 19세기부터 이어져 온 승무원의 모자와 정복, 펀치 홀 등을 철도 역사의 유산으로 유지하고 있다. 옛날 한국에도 있었던 정복 승무원과 기차표 펀칭을 약 40년 만에 신기하게 경험하고 메타천역에 내렸다.

뉴저지에서도 여전한 휠체어 이동의 장벽

미국 뉴저지 어빌리티즈 엑스포의 휠체어 수리센터에서 김종배 교수가 여행 중 고장 난 전동휠체어 조이스틱 부품을 수리받고 있다. 사진=김종배 교수 제공
미국 뉴저지 어빌리티즈 엑스포의 휠체어 수리센터에서 김종배 교수가 여행 중 고장 난 전동휠체어 조이스틱 부품을 수리받고 있다. 사진=김종배 교수 제공

메타천역은 조그만 역이다. 역 앞에 버스정류장이 보인다. 뉴욕시 옆이니 대중교통 접근성은 당연히 보장되겠지 싶었다. 구글 지도를 검색하고 컨벤션센터로 가는 813번 버스를 기다렸다.

버스가 왔는데 저상버스가 아니라 전자유압식 리프트가 설치된 고상버스였다. 그런데 고장이 나서 모터가 작동하지 않는다. 다음 버스를 기다렸지만 또 마찬가지였다. 버스기사는 "대부분 버스가 다 그렇다"며 택시를 타는 것이 나을 것이라고 한다.

"여기가 원주야?"

투덜거리며 우버 앱을 켰지만 WAV(휠체어 탑승 차량)도 잡히지 않는다. 한참을 씩씩거리다가 컨벤션센터에서 만나기로 한 이하예나 박사에게 전화했다. 이 박사가 알아보고 다시 연락했다.

"메타천역까지 셔틀을 운행한다고 해서 이야기했으니 조금 기다리시라."

역 앞으로 돌아가니 'Abilities Expo 셔틀 픽업'이라는 표지가 붙어 있다. 곧 휠체어 탑승용 미니밴이 도착했고, 주최 측에서 준비한 차량을 타고 어쨌든 목적지에 도착했다.

사실 내가 거주하는 원주시에도 일부 노선에 저상버스가 도입되었지만, 전동경사로가 고장 나 휠체어 승객 서비스를 포기하고 있는 실정이다. 원주시 저상버스의 경사로는 버스 바닥 아래에서 모터로 나오고 들어가는 전동 포켓 방식이다. 모터가 고장 나면 수동으로 빼낼 수 없다는 맹점이 있다.

한국의 여러 지자체에서 일어나는 상황이 뉴욕 맨해튼 바로 건너편 뉴저지에서도 일어나고 있었다. 수리비 예산을 제대로 마련하지 않은 불합리한 재정 구조 때문이라는 점은 원주시나 뉴저지나 비슷하다.

다만 뉴저지는 대중교통 수요가 많은 뉴욕시와 달리 주민 대부분이 승용차로 이동해 주정부의 교통예산을 고속도로와 도로망 정비에 많이 할애한다고 한다. 정치·행정적 우선순위와 예산 부족이라는 점에서 뉴저지는 원주시와 결이 조금 다른 것 같다.

장애인 보조기기 박람회에서 만난 특별한 인연

미국 뉴저지 어빌리티즈 엑스포에서 김종배 교수(왼쪽)가 장애인 산악인 마크 웰먼과 10년 만에 재회했다. 두 사람 뒤로 장애인을 위한 체험용 인공암벽이 보인다. 사진=김종배 제공
미국 뉴저지 어빌리티즈 엑스포에서 김종배 교수(왼쪽)가 장애인 산악인 마크 웰먼과 10년 만에 재회했다. 두 사람 뒤로 장애인을 위한 체험용 인공암벽이 보인다. 사진=김종배 제공

휠체어 밴에서 내리니 이 박사가 기다리고 있다. 우리는 엑스포 전시장에 등록하고 입장했다. 나는 먼저 휠체어 제조사 부스의 수리센터에 들러 여행 도중 고장 난 조이스틱 브라켓을 고쳤다. 한국의 보조기기 박람회에서도 이런 수리센터를 운영하면 좋겠다.

어빌리티즈 엑스포는 매년 LA, 뉴욕·뉴저지, 시카고, 휴스턴·댈러스, 올랜도, 피닉스 등 미국 주요 도시에서 7회 정도 개최된다. 휠체어 회사들이 많이 참가해 장애인 소비자들이 직접 제품을 체험할 수 있는 미국 최대 규모의 보조기기 박람회다.

나는 각 부스를 돌며 새로운 브랜드와 신제품, 기술 동향을 살펴보고 현재 수행 중인 '전동휠체어 개발'에 참고할 만한 것들을 조사했다. 전시장을 대부분 둘러보았을 때 한쪽 끝에 낯익은 시설물이 눈에 들어왔다.

미국 어빌리티즈 엑스포 행사장에 설치된 장애인 암벽등반 체험용 인공 암벽. 휠체어 이용자도 도전할 수 있도록 특수 장비와 안전 로프 등이 마련돼 있다. 사진=김종배 교수 제공
미국 어빌리티즈 엑스포 행사장에 설치된 장애인 암벽등반 체험용 인공 암벽. 휠체어 이용자도 도전할 수 있도록 특수 장비와 안전 로프 등이 마련돼 있다. 사진=김종배 교수 제공

자일과 카라비나 등 등반 장비가 달린 이동식 인공암벽이 우뚝 서 있었다. 그 아래에는 미국의 전설적인 장애인 산악인이자 적응형 스포츠(Adaptive Sports)의 선구자인 마크 웰먼(Mark Wellman)이 앉아 있었다.

마크 웰먼은 1982년, 22세에 요세미티 국립공원 인근 세븐 게이블스(Seven Gables) 산을 등반하다 약 30m 아래로 추락해 척수(T11~T12) 손상으로 하반신이 마비되었다.

1989년에는 등반 동료 마이크 코벳(Mike Corbett)과 함께 특수 부목과 다리 고정 장치, 상체 힘으로 로프를 끌어올리는 풀업(Pull-up) 방식의 보조 장비를 이용해 요세미티의 900m 수직 절벽 엘 캐피탄(El Capitan)을 정복했다.

7일 동안 7,000번이 넘는 팔굽혀펴기 동작 끝에 이뤄낸 성취였다. 1991년에는 요세미티의 또 다른 상징인 하프 돔(Half Dome) 암벽등반에도 성공했다.

“Climb your mountain!”…10년 만의 재회

김종배 교수가 숲속에서 휠체어에 탄 채 특수 승강 장비를 이용해 나무 위로 오르는 체험을 하고 있다. 지상에서는 안전요원들이 장비를 조작하고 참가자들이 이를 지켜보고 있다. 사진=방송 화면 캡처
김종배 교수가 숲속에서 휠체어에 탄 채 특수 승강 장비를 이용해 나무 위로 오르는 체험을 하고 있다. 지상에서는 안전요원들이 장비를 조작하고 참가자들이 이를 지켜보고 있다. 사진=방송 화면 캡처

나도 산을 좋아했다. 대학생 때 잠시 산악부에 몸담으며 주말이면 북한산 인수봉에서 암벽등반을 했고, 지리산을 네 번 종주했다. 지금도 설산을 보면 가슴이 설렌다.

3년 전 다큐멘터리 전문 제작자인 이석재 PD, 대학교 산악부 선배이자 우리나라 아보리스트(산림관리전문가) 1호인 김병모 회장께서 '휠체어 나무에 오르다'라는 시나리오를 가지고 와서 다큐멘터리 제작 참여를 제안했다. 휠체어를 탄 채 팔 힘으로 나무에 올라가 집라인으로 나무 사이를 날아가는 프로젝트였다.

경수 5번을 다쳐 사지마비가 된 이후 손을 전혀 사용하지 못하고, 팔도 이두박근(소위 알통)에만 신경이 전달되기에 오직 어깨와 팔 굽힘만으로 내 몸을 지상 20m까지 당겨 올려야 했다.

손에 로프를 묶고 이두박근으로 당기는 풀업 방식의 특수장치를 휠체어 제조사 '재성'의 도움을 받아 직접 제작했다. 재활 전문 운동센터 '디딤돌'에서 이용로 박사로부터 특별 지도를 받고, 집에서도 문틀에 밴드를 걸고 운동했다.

장애인 암벽등반가 마크 웰먼의 저서 《Climbing Back》 표지(왼쪽)와 김종배 교수에게 남긴 친필 서명(오른쪽). 웰먼은 책에 “Climb Your Mountains!(너의 산을 오르라)”라는 메시지를 적어 김 교수의 도전을 응원했다. 사진=김종배 제공
장애인 암벽등반가 마크 웰먼의 저서 《Climbing Back》 표지(왼쪽)와 김종배 교수에게 남긴 친필 서명(오른쪽). 웰먼은 책에 “Climb Your Mountains!(너의 산을 오르라)”라는 메시지를 적어 김 교수의 도전을 응원했다. 사진=김종배 제공

나름 다친 이후 처음으로, 아니 내 생애 처음으로 열심히 체력훈련을 한 끝에 살아 있는 근육, 이두박근 하나로 나무에 올랐다. 그 기분을 누가 알겠는가?

고진감래! 그 시원함! 이 도전은 KBS 특집 다큐멘터리로 방영되었다.

나는 10년 전인 2016년 미국 내슈빌에서 열린 ISS(국제시팅심포지엄)에 참가했을 때 마크 웰먼을 처음 만났었다.

10년 만에 다시 만난 그나 나나 이제 노인의 나이에 접어들고 있다. 10년 전 처음 만났을 때, 그가 자신의 자서전을 건네주면서 책 첫 장에 사인과 함께 적어 주었던 말이 있다.

“Climb your mountain!”

“너의 산을 오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