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지난 3월 중순 경부터 양극성장애로 인한 울증 삽화(우울한 기분이 지속 되는 경우)가 오래 이어져 다사다난한 시간을 보냈다.

가장 먼저 일상생활을 비롯한 자기관리에 있어 피폐해져 갔다. 그것은 서서히, 그러나 지속적으로 삶을 제대로 붙잡을 기력이 없어지는 것이었다. 기본적인 일상 루틴을 관리하기 위한 시도조차 의욕을 낼 수 없었다.

점점 두서없는 생각에 자주 빠졌다. 맥락 없이 웃고, 그걸 숨기느라 구석으로 숨고, 참지 못할 우울감이 이내 몰려오기도 했다. 그 말인즉 직면한 삶에 집중하는 사고를 할 수 있을 상태가 아니었다.

3년 전에 상세불명의 정신증(F29)을 진단받기도 했었으니, 정신증 증상이 다시 발현되는 것에 대한 우려도 몰려왔다. 주변의 인간관계에 신경을 기울일 의욕과 여력마저 상실되어 고립에 대한 두려움도 함께였다.

다니던 정신과의원에는 3월부터 이미 일주일에 한 번씩 내원하여 매번 약 처방을 조정하고 있었다. 괴로움에 대한 호소가 심할 때 병원을 방문한 4월 초에는 단기로라도 입원치료를 하는 것이 좋겠다고 진료의가 내게 권유하고 서류를 써 주었다. 그 길로 지인 추천을 통해 알게 된, 입원 병동이 있는 다른 병원으로 이동해서 상담을 받았다.

그날 바로 입원하진 않았지만, 같이 사는 가족들과 친구들, 그리고 함께 일하는 사람들에게 내가 입원한다는 소식을 전하고 다시 와서 자의입원을 할 계획이었다.

3월에는 공공근로 만근을 힘겹게 채웠지만 4월에는 무리였다. 하루는 내가 출근을 하자마자 모여 있는 사람들을 보고 공황에 빠진 듯 신체적 반응이 얼어붙은 적이 있었다. 공공근로 근무지 센터장님이 15분 만에 내게 퇴근하는 게 좋겠다고 말을 건넸다. 그땐 공공근로마저 못 하니 난 어떤 일도 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입원을 진행하기 위해 슬슬 내 생활권의 주변 정리와 준비를 하고 있던 시점에 우선 부모님을 비롯한 혈연가족들에게 말을 꺼냈다.

내 정신과적 진단에 대해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에 그간 부정적이었고 이번에도 당연히 그럴 것 같았던 가족들이 이번 자의입원 결심에는 큰 갈등 없이 납득했고, 그만큼 내가 외부에서 보기에도 심각해 보이는 상태였음을 실감하게 되었다.

다음은 공공근로 근무지에 2주 정도 정신과 입원을 하겠다고 정중히 보고를 드렸다. 승낙을 받고 빠른 쾌유를 바란다는 답이 돌아온 점에 감사하고 또 마음이 힘들던 중 적잖은 안심이 되었다.

가까운 친구의 도움을 받아 연결된 관련 전문가 한 분께 지금의 내 급성기 상태에 대한 조언과 상담을 받을 기회가 생긴 날도 있었다. 정신적 장애인으로서 내가 나서서 하겠다고 (조증 때 계획 및 선언하고) 벌여놓은 일이 너무 많으니 어느 정도 내려놓고 쉬면서 사는 게 필요하겠다는 조언을 받고, 그 외 여러 유익한 대화를 나누었다.

필자는 에이블뉴스 칼럼을 비롯한 정신적 장애 계열에서의 여러 일들을 비롯하여 공공근로를 하면서 원격대학 수강을 통해 올해부터 다시 재입학, 학업을 이어가고 있다. 당장 4월 1일부터 12일 사이에 두 과목의 과제물을 제출해야 했다. 몇 주 입원을 한다면 오랜만에 의욕적으로 붙잡은 학업을 특별휴학으로든, 어떻게든 다시 내려놓아야 하는 것도 아쉬웠지만, 차라리 그건 개인적인 일에 대한 미련에 불과하기라도 했다.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 연결되고 협업하며 내 책임을 다해야 하는 다른 업무들이 있었다. 내가 ‘성실하지 못하고 무책임’한 것이며, 내 몫까지 고생할 사람들에게 ‘진심으로 죄송해야 하겠다’는 마음까지 스스로 내려놓지는 못했었다.

누가 뭐라 하지 않아도 은연중에 스스로를 탓했다. 장애와 증상으로 인해 일을 하기 어려우면 쉬고 올 수 있어야 하겠다는 것도 한편으론 생각했다. 그럼에도 일단은 나를 믿었을 사람들에 대한 죄책감과 앞으로 내 위치와 상태가 더 망가질 것에 대한 두려움에 마음이 힘들고 아팠던 것 같다.

울증 삽화가 상당 부분 지나간 지금의 근황을 적자면, 다니던 병원에서 입원 권유를 받은 후 그렇게 그 소식을 알릴 곳들에 다 알린 후 자의입원을 하겠다고 작심하고 병원에 찾아갔다. 병상이 있는 병원으로 두 번째 방문이었다. 그러나 담당 의사 진료 시간을 내가 잘못 인지해서 다시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시간만 안 헷갈렸다면 아마도 그날 입원을 했을 것이다.

이후 어떤 장난 같은 운명인지, 입원하겠다고 말은 다 해놓은 상태에서 조금씩 상태가 호전되고 나름대로 자기 자신을 이끌 방법과 활력을 찾아 원격대학 과제물은 (1점 감점되는) 추후 추가 제출 기간 안에 무사히 둘 다 집중해서 제출할 수 있었다. 공공근로도 다시 출근할 수 있겠다는 ‘정정 보고’를 드린 후 무사히 하고 있다.

그리고 지금은 이 한 달여 동안의 일을 떠올리며 ‘죄송함’이라는 감정에 대한 글을 쓰고 있다. 글쓰기를 포함하여 정신적 장애 계열에서의 활동 또한 다시 해 나갈 준비태세다. 여전히 일주일에 한 번씩 정신과에서 통원진료와 약 처방을 받고는 있지만 상대적으로 나아진 컨디션으로, 그리고 당사자인 나의 자기 주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정신장애인이지만 한편으로는 자폐 당사자이기도 한 내게, 앞서 말한 이 죄송함은 다시 떠올리기엔 어느 정도 익숙한 기분이 든다. 나의 소통과 정신적 특성이 내 장애로 인해 부정적인 결과를 불러올 것임을 미리 머릿속에서 ‘시뮬레이션’하게 되어버리고, 그러니 자주 죄송해야 할 것 같은 기억들은 내 삶에 많았기 때문이다. 가령 “제가 불편하게 말하거나 행동한 부분이 있다면 죄송합니다.”가 사람 만난 날 내 마지막 인사말로 입에 붙어버리는 일이 그렇다.

물론 급성기와 컨디션 기복으로 인해 하겠다던 일을 계획대로 하기 힘들게 될 때의 정신장애인의 마음과 사람을 만났을 때 내가 어딘가 서툴고 거부감 주고 중요한 매너를 놓친 게 아닐까 불안한 자폐 당사자의 마음 사이에는 다소 차이가 있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공통적으로 죄송해하는 데 익숙해지는 이유가 자신의 정신적 장애 특성이라는 현상에 주목하게 되었다. 마치 비당사자처럼 살아가는 것을 해내길 갈망해야 하는 곳에서 살아가는 듯하다는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이런 ‘죄송한’ 일들은 당사자에게도 매우 익숙해지고, 또 피곤해지게 만든다.

정신적 장애인으로 살아온 입장에서 신경다양성을 비롯한 다양성과 장애에 대한 수용이 우리 사회에 필요함을 알게 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살아온 경험의 험난함을 통해 자기 자신을 드러내기를 두려워하고 자신감을 깎는 경향이 내면화되기도 한다는 안타까운 현실도 직시할 수밖에 없다.

신경다양성을 가진 당사자들이 자신의 표현과 권리에 대해 주저하지 않을 수 있도록 장애와 다양성에 대한 이해가 증진되고 수용되는 세상을 꿈꾼다. 당사자가 자신의 특성을 긍정하고 오롯이 행복한 자아실현을 지향할 수 있도록 말이다. 정신적 장애를 이해하는 길에서, 우리는 능력주의, 성과주의로 획일화되지 않는 신경다양성에 한 걸음 더 진정으로 다가가 추구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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