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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대한민국에서 농아인은 얼마나 권리를 보장받고 있는가?2025-06-05 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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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서 농아인은 얼마나 권리를 보장받고 있는가?

수어를 하는 남자 일러스트수어를 하는 남자 일러스트
6월 3일은 농아인의 날이다. 우리 사회에서 농아인의 정보접근권을 비롯한 권리는 얼마나 보장되고 있는 걸까. ©픽사베이
  • 6월 3일은 농아인의 날

[더인디고=박관찬 기자] 지난 6월 3일은 제21대 대통령 선거일이었지만 농아인의 날이기도 했다. 장애인 인구 통계조사에 따르면 농인의 비중은 적지 않은 수로 나타남에도 불구하고 실생활 곳곳에는 여전히 농인들이 불편함을 겪고 있는 부분이 존재한다.

#1. 전화가 필수면 전화가 어려운 농인은?

특히 청각장애로 인해 음성을 통한 전화통화가 어려운 농인에게는 여러 가지 행정절차를 하는 과정에서 전화통화가 필수인 경우 많은 불편함을 겪고 있다.

스마트폰에 결제수단을 등록하기 위해 모 은행의 계좌번호를 입력하다보면 ‘본인인증’ 절차가 반드시 나온다. 금융과 관련된 업무인 만큼 본인 인증이 가장 중요한 절차라고 할 수 있는데, 그 과정에서 꼭 거치게 되는 게 전화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은행이나 통신사마다 본인인증 방법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을 뿐 결국 전화통화를 해야 하는 건 똑같다. 예를 들어 입력한 본인 핸드폰 번호로 문자가 발송되어오면, 해당 번호를 전화가 걸려왔을 때 음성으로 대답해서 본인 인증을 하는 경우가 있다. 이는 농인뿐만 아니라 말을 해야 하는 언어장애인에게도 어려움을 줄 수 있다.

다른 경우에는 핸드폰으로 인증번호가 전송되어 오고, 그 뒤 전화가 걸려왔을 때 해당 번호를 입력함으로써 본인인증을 하는 경우가 있다. 이는 굳이 전화통화를 하지 않아도 번호만 입력하면 된다는 점에서 농인도 가능한 영역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전화가 걸려왔을 때 안내멘트를 듣지 못하기 때문에 인증번호를 입력해야 하는 ‘타이밍’을 맞추기가 쉽지 않다.

농인의 전화통화 지원을 위한 손말이음센터와 같은 문자 또는 수어 중계서비스가 있다. 하지만 본인 인증을 위한 과정에서는 이러한 서비스를 이용하기 쉽지 않을 수 있다.

본인 인증은 본임임을 확인하는 과정이기 때문에 반드시 전화 통화를 하지 않더라도 다른 방법으로도 얼마든지 본인 인증을 할 수 있다. 특히 장애가 있는 경우 그 장애에 맞춰진 방법으로 본인 인증을 할 수 있는 선택의 영역과 접근성이 충분히 보장될 수 있어야 한다.

#2. 수어통역의 확대 필요

올해 4월 장애인의 날 행사가 열린 곳 중에서 아쉬웠던 것 중 하나는 ‘장애인의 날’ 행사임에도 불구하고 행사 주최측에서 수어통역이 제공되지 않아 행사에 참여했던 농인들이 문제를 제기했던 것이다. 문자통역이 제공되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농인들 중에는 문자통역보다 수어통역을 더 선호하고 편하게 생각하는 이들이 있다. 문자통역을 제공할지 수어통역을 제공할지는 주최측의 선택사항이 아니라 당연히 둘 다 제공해야 하는 게 의무다.

하지만 현실은 장애인의 날 행사에서조차도 농인의 접근권이 제대로 보장되지 않고 있다. 행사에서 사회자의 멘트에 사람들이 웃고 박수를 친다면, 통역이 제대로 제공되지 않으면 농인들은 사람들이 왜 웃고 박수를 치는지 알지 못한다. 그래서 농인들의 정보접근을 보장하기 위해, 또 함께 행사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농인에게 맞는 통역을 제공해야 하는 것이다.

또 이번 대통령선거를 위해 사전투표와 본투표를 진행했던 어느 투표소에도 수어통역을 제공하는 곳은 찾아보기 어렵다. 시각장애인이 투표를 하러 가면 점자로 된 투표용지를 제공받을 수 있지만, 농인들은 혼자 투표를 하러 가면 투표소의 관계자들과 원활한 의사소통이 어려울 수밖에 없다.

농인들의 접근권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병원, 약국, 주민센터 등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방문하게 되는 곳들은 수어통역사가 상주하고 있는 게 한 가지의 방법이 될 수 있다. 농인들의 의사소통과 정보접근을 보장함은 물론 수어통역사의 일자리를 창출할 수도 있다. 물론 인공지능(AI)을 활용한 수어통역지원도 시도되고 있지만, 이 또한 지원하더라도 전국적으로 배치함으로써 어디에서든 농인이 접근성이 원활하게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

더 나아가 국민들이 대한민국 제2언어인 수어를 교육과정에서 공통과목으로 지정하여 필수로 배우도록 하는 움직임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수어로 기본적인 인사만 하는 게 아닌, 농인들을 넘어 모든 국민들이 수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한 사회가 된다면 농인들의 여러 권리들을 훨씬 잘 보장할 수 있을 것이다.

[더인디고 박관찬 기자 p306kc@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