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일부터 2일까지 서울 이룸센터에서 열린 ‘2026 국제장애인권컨퍼런스’에 참석한 주요 관계자들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한국장애포럼 제공2026년은 UN장애인권리협약이 발효된 지 20년이 되는 해입니다. 이를 기념해 지난 9월 1일부터 2일까지 열린 ‘2026 국제장애인권컨퍼런스’에서는 장애인의 권리를 국제개발협력의 전 과정에 어떻게 담아낼 것인지 다양한 논의가 이어졌습니다.
더인디고는 컨퍼런스 공동 주최기관 활동가의 시선으로 바라본 현장과 고민을 세 편의 기고로 전합니다. 공식적인 발표 내용뿐 아니라 현장에서 오간 질문과 생각, 그리고 장애포괄적 국제개발협력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생생한 목소리를 담았습니다. – 편집자 주
l 최한별 한국장애포럼(KDF) 사무국장
[더인디고] 한국장애포럼 활동의 가장 큰 부분인 유엔 장애인권리협약(CRPD) 이행 촉진 및 모니터링 활동을 하면서 특히 한국과 지리적으로 가까운 아시아지역 장애계와 교류할 기회가 많았습니다. 아시아 동료들과의 이야기를 통해 경제적 성장이 상대적으로 저조한 국가들에서 CRPD 이행에 대한 시민사회의 요구나 이를 이행하고자 하는 국가 차원의 다양한 노력들(법이나 제도를 만드는 것 등)이 있음에도 CRPD 이행이 어려운 것에는 방법을 잘 모르기도 하고, 예산이 없기 때문이라는 점을 알 수 있었습니다.
많은 아태국가가 CRPD 가입 이후 이에 부합하도록 법 제도를 정비하고 장애인 권리를 보장하는 법률을 만들어 왔지만, 법이 실제로 이행되기 위해서는 정책 디자인, 전달 체계 구축, 전문가 양성, 정책 이행 및 평가에 이르기까지 지식적·인적·물적 지원 투입이 핵심적입니다. 또한, 국가적 자원을 투입하기 위한 사회적 합의와 인식을 이끌어내기 위한 정부 차원의 노력도 중요한데, 이를 위해 가장 많이 사용되는 방법이 바로 “해외 사례 참고”입니다.
정책 이행을 하면서 실패와 도약을 모두 경험해 본 선행 국가들이 해당 제도의 필요성과 실행 방식을 후행 국가들에 전달하고 이들에 지식과 인적·물적 자원을 지원하는 것은 그러한 지원을 받는 국가들에게는 국내 정책을 더욱 인권적으로 만들고, 증거기반 정책 실현을 위한 토대가 되고, 지원을 하는 국가들에는 국제 질서 내 책임일뿐만 아니라 새로운 시대에 새로운 제도를 함께 고민하며 자국 내 기존 제도의 문제점을 확인하고, 더욱 창의적인 해결 방법을 찾을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합니다.
장애인권리협약은 전 세계 거의 모든 국가가 가입한 최대 규모의 국제 인권규범입니다. 그렇기에, 국제개발협력을 통해 CRPD를 이행하는 것은 수원국과 공여국 모두의 의무이자 효과적 실천을 앞당기는 ‘윈-윈(win-win)’ 전략이라는 것입니다. 이번 2026 국제장애인권컨퍼런스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국제개발협력을 향하여”는 바로 이러한 인식에 기반해 탄생했습니다. 컨퍼런스는 이 주제에 대해 오랫동안 실천적으로, 규범적으로 노력해온 한국국제개발협력단 개발협력연대 장애분과(DAK SDGs10(장애)분과)가 공동주최했고,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 국제장애연합(International Disability Alliance, IDA), TCI-Global등 국제단체뿐만 아니라 한국의 아시아 내 주요 개발협력 파트너국가인 방글라데시, 네팔, 라오스에서 장애인 권익옹호 활동가이자 개발협력 사업을 직접 수행해온 전문가들이 2026년 9월 1-2일, 서울에 모여 진행되었습니다.
현장에도 많은 분이 함께해 주셨고, 유튜브 라이브에도 한국어·영어 채널 도합 약 1,000여 명이 넘는 분들이 참여하셨던 핫한 컨퍼런스, 어떤 이야기가 오갔는지 소개해드릴게요.
▲기조강연을 하고 있는 게렐 돈도브도르지 UN 장애인권리위원(사진 왼쪽)과 제롯 클라인 IDA부총장(사진 오른쪽) /사진=한국장애포럼 제공물음표만 가득했던 머릿속, 기조강연을 통해 지도를 그리다
컨퍼런스의 제일 첫 순서는 기조강연이었습니다. 게렐 돈도브도르지 유엔장애인권리위원님과 제롯 클라인 IDA 부총장님이 각각 기조강연을 해주셨어요. 게렐 위원님은 CRPD에 기반한 “장애포괄적” 국제개발협력의 의미와 방향을 짚어주셨고, GLAD 네트워크의 공동의장 기구인 IDA의 제롯 부총장님은 장애인 단체의 입장에서 국제개발협력이 어떻게 개편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방향을 제시해 주셨습니다.
참고로 GLAD네트워크는 포용적인 국제개발과 인도적 지원을 실현한다는 공동의 목표를 가진 양자·다자 공여국, 국제기구, 공공·민간 재단, 그리고 장애인운동의 주요 연대체가 참여하는 협력체(https://gladnetwork.net)입니다.
각각 다른 위치와 입장에서 의견을 주셨지만, 두 분의 메시지는 공통적이었습니다. 우선, ODA 규모가 전 세계적으로 줄어드는 상황에서(OECD DAK의 국제개발협력 규모는 2025년에 전년 대비 23.7% 감소) 국제개발협력에서의 재정적 선택은 그 방향과 목적의 측면에서 CRPD를 비롯한 인권 규범 이행과 더욱 긴밀하게 연결됨으로써 그 효과성을 극대화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흔히 국제개발협력 사업에서 장애 포용성을 측정하기 위해 사용되는 “장애 마커”만으로는 진정한 측정이 어렵다는 지적도 공통적이었습니다. 장애정책마커상 ‘중요목적(significant)’으로 보고된 약 200억 달러 규모의 사업을 검토한 결과, 사업 설명에서 장애와 관련된 명확한 근거를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보고 금액의 약 10%에 불과했다고 합니다. 결국, 사업 전반에서 진정한 장애 포용없이 데이터만 활용하는 것은 실질적인 변화 없이 진전이 이루어진 것처럼 보이게 만들 위험이 높다는 것입니다.
기조강연을 통해 국제개발협력의 현황을 생생하게 접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장애인권리협약에 기반한 전 세계 장애인 공동의 인권증진에 국제개발협력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그렇기에 국제개발협력이 어떤 모양새로 변화해나가야 하는지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컨퍼런스를 준비하면서도 물음표만 잔뜩 있었던 머릿속에 점차 지도가 그려지고, 지형이 만들어지는 기분이었어요.
핵심은 “대상이 아닌 파트너이자 리더로서의 장애인 통합”
라운드테이블과 패널세션은 기조강연을 통해 제시된 문제의식을 실제 국제개발협력 현장에서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지를 심도있게 논의하는 자리로 구성되었습니다.
라운드테이블에서는 국제개발협력 공적 수행기관(KOICA, UN ESCAP), 민간 기관(국제개발협력민간협의회 KCOC, 한국장애인재활협회), 그리고 국제개발협력 사업을 직접 수행하고 있는 장애인 당사자(아시아-네팔, 라오스 등) 간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시민사회 의견서 분석 결과 2018년부터 2022년까지 ‘참여적 개발’ 마커가 붙은 887개 사업 가운데 장애 관련 사업은 21개(2.36%)였고, 예산으로는 8,678억 원 중 41억 7천만 원(0.48%)에 그쳤다는 현황 분석(신재은 KCOC 센터장)과 더불어, KOICA와 UN ESCAP 등 공적 국제개발협력 수행기관에서도 이러한 문제의식 속에서 장애인의 진정한 사업 통합을 위한 논의와 계획을 세우고 있다는 점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국내외 장애계는 이러한 계획을 환영하면서, CRPD의 원칙에 따른 사업 수행을 위한 사업 디자인 단계에서부터의 장애인 당사자 참여 확대를 요청했습니다.
▲장애포괄개발협력 이행을 위한 라운드테이블 토론 개최 장면 /사진=한국장애포럼 제공이어진 세션 1, 2는 올해 6월 뉴욕 유엔 본부에서 진행된 CRPD 당사국회의의 주제에 따라 구성되었습니다.
대주제는 “CRPD 20년의 성과와 이행의 다음 단계”였고, 소주제 3가지는 각각 (1) 착취·폭력·학대로부터의 자유 (2) 자립·자율·독립을 위한 돌봄·지원체계 강화 (3) 참여에서 대표성으로의 이행이었습니다. 이 주제들은 CRPD 20주년을 맞이해 열린 행사를 구성하는 만큼, 지난 20년간 전 세계가 이룬 성취는 무엇인지, 그리고 여전히 남겨져 있는 과제는 무엇인지가 잘 드러났습니다. 발제자들은 당사국회의에서 확인한 CRPD의 성과와 과제에서 길어올린 국제개발협력에 대한 시사점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모든 패널의 발표와 토론이 소중했지만, 특히 이한결 한국정신장애인연합회 전략기획본부장님과 박연지 한국피플퍼스트 집행위원님의 말씀이 인상깊었어요. 두 분 모두 CRPD의 많은 성과를 축하하면서도, 이러한 성과들에서 가장 배제되어왔던 정신장애인과 발달장애인의 이야기를 나눠 주셨습니다.
이한결 본부장님은 1985년 한국 정부가 일본의 ODA 차관으로 대형 정신병원 11곳 2,789병상을 확충했고 당시 사후평가가 그 성과를 ‘정신병상 수의 증가’로 기록했던 사례를 통해 국제개발협력이 CRPD에 부합하지 않을 때 차별과 억압을 강화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음을 강조했습니다.
박연지 집행위원님 역시 발달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차별로 인해 조직을 구성하고 운영하기조차 쉽지 않은 환경 속에서, 이들이 국제협력의 주체가 되고 나아가 다른 국가의 발달장애인 동료들과 모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한 현실을 말하면서 “장애인의 진정한 참여를 이야기하는 이 컨퍼런스부터도 발달장애인이 참여하기 너무 어렵다”는 촌철살인(!)을 날리셨습니다.
컨퍼런스 주최측으로서 무척 부끄러우면서도 감사한 지적이었습니다. 덕분에 사업 논의, 구성과 이행 및 평가 전반에서 배제되어왔던 장애인 당사자 그룹이 더 많이, 진정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그래서 접근가능한 환경을 구축하는 데 우리의 역량이 쌓일 수 있어야겠다는 생각을 할 수 있었습니다. 높은 접근성을 보장할 수 있는 우리의 역량이 쌓였을 때 비로소 보이게 되는?비어있던 관점들을 통해 현재와 미래를 바라보는 시야가 확장될 수 있겠죠?
CRPD 20주년과 동시에 국제개발협력이 점차 축소되는 국제 사회의 역동을 함께 짚어본 국제장애인권컨퍼런스 1일차 후기는 제롯 클라인 부총장님의 발언으로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CRPD가 제시하는 가장 근본적인 통찰은 이것입니다. 장애는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지나치게 좁은 생각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사회의 한계를 드러냅니다. 사회가 단지 장애인을 위한 공간을 조금 마련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됩니다. 사회 자체가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다양성에 걸맞은 사회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진전을 기념하는 오늘, 이 혁명을 가능하게 만든 모든 분을 기억하고 존중합시다. 그리고 앞으로의 길을 그려나가면서 부분적인 포용과 형식적인 참여, 과거의 배제를 현대적으로 포장한 새로운 형태를 거부합시다.
돌봄을 받기 위해 세상에서 사라져야 하는 사람이 없는 세상을 만듭시다. 보호받기 위해 자신의 목소리를 포기해야 하는 사람이 없는 세상을 만듭시다. 가치를 인정받기 위해 남다른 사람이 되어야 하는 사회를 만들지 맙시다. 그리고 인간 공동체의 문 앞에서 초대받기를 기다려야 하는 사람이 없는 세상을 만듭시다.
모든 사람이 이 세상에 당연히 존재할 것으로 기대되는 사회를 만듭시다. 모두가 온전히 속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듭시다. 그리고 그것을 장애인이 직접 참여하고 주도하 며, 장애인을 위해 함께 만들어갑시다.”
[더인디고 THE INDIG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