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배 교수가 2016년 북미재활공학회(RESNA)에 대학원생 제자들과 참석해 학회장으로부터 기념 티셔츠를 선물받고 있다. 사진=김종배 교수 제공
김종배 교수가 2016년 북미재활공학회(RESNA)에 대학원생 제자들과 참석해 학회장으로부터 기념 티셔츠를 선물받고 있다. 사진=김종배 교수 제공

■ RESNA, 재활공학의 산을 오르다

뉴저지 컨벤션센터에서는 장애인 보조기술 소비자인 장애인들을 위해 열리는 어빌리티즈 엑스포(Abilities Expo)와 함께 재활공학 전문가들의 학술대회인 북미재활공학회(RESNA)가 같은 장소에서 개최되었다.

RESNA는 내가 다치고 16년 만에 공부를 재개하며 선택한 재활공학이라는 운명적인 학문을 펼쳐 나가는 중요한 길이었다.

처음 RESNA에 참석한 것은 미국에 간 이듬해인 2002년, 미니애폴리스에서 개최되었을 때였다. 그곳에서 나는 처음으로 국제학술대회에 참가했고, 다양한 재활공학 분야의 연구와 무수히 많은 장애인 보조기술 제품들을 경험했다.

그 이후 거의 매년 RESNA 학술대회에 참석해 논문을 발표하고, 다양한 재활공학 연구와 제품들을 접하면서 내가 올라야 할 재활공학의 고지들을 하나씩 돌파해 나갔다.

특히 박사과정 3년 차에는 RESNA 학생논문상과 함께 상금 1,000달러를 받았고, 내 전문 분야인 원격재활 연구회 SIG 19의 회장을 2년간 맡기도 했다.

매년 학회에 참석하면서 미니애폴리스, 워싱턴, 애틀랜타, 피닉스, 토론토 등 여러 도시를 가족과 함께 여행하는 즐거움도 자연스럽게 누릴 수 있었다. 교육과 연구를 하는 교수에게 학술대회 참가는 학문의 지속적인 발전과 교류를 위해 필수적이다.

사실 사고 이후 공부를 계속하는 것은 당연히 포기하고 지냈다. 그런데 나에게 다시 공부할 동기와 용기를 갖게 한 것이 바로 이 '학술대회'였다.

■ 16년 만에 다시 켜진 학문의 불씨

김종배 교수(왼쪽)가 HCI KOREA 학술대회 참석을 이끈 정지홍 교수와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김종배 교수 제공

KAIST 석사과정 시절, 지도교수님을 따라 연구실 식구들과 함께 춘천에서 열린 통계학회에 참가한 적이 있었다. 그때는 닭갈비와 막국수를 처음 먹어본 기억이 가장 크게 남아 있다.

사고 이후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집에 갇혀 있다시피 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다가 PC가 보급되고, 전동휠체어를 타게 되고, 인터넷이 열리면서 새로운 가능성이 생겼다.

나는 국내 최초로 재활 정보를 전문적으로 제공하는 '한국척수손상사이버센터' 홈페이지를 구축해 1996년 운영을 시작했다.

당시는 삼성과 현대도 홈페이지를 이제 막 개설하던 시대였다. 한국 최초의 인터넷 서비스 제공업체(ISP)인 아이넷의 대표 허진호 선배의 도움으로 인터넷 전용회선과 홈페이지 제작을 지원받았고, 사랑의열매 기금으로 서버를 구축해 운영을 시작했다.

당시 홈페이지에 자원봉사자 게시판을 개설해 영어 번역과 홈페이지 디자인 자원봉사자를 모집했는데, 한국외국어대학교 동시통역대학원 학생들과 정지홍 교수님이 지원해 주셨다.

그때 알게 된 정지홍 교수님(현 중국 칭화대 교수)께서 나에게 한국HCI학술대회(HCI Korea)에서 이 홈페이지를 발표해 보라고 이끌어 주셨다.

당시 한국HCI학술대회는 매년 강원도 평창 피닉스파크 스키리조트에서 개최되었다. HCI(인간컴퓨터상호작용)는 컴퓨터과학과 디자인 전공자들이 함께하는 대표적인 융합학문이다.

가족과 함께 스키와 리조트를 즐기며 다학제적 학술 활동을 펼치는 HCI학술대회는 10년 넘게 사회와 단절돼 지낸 나에게 새로운 세상을 열어주었고, 다시 공부하겠다는 열정을 일깨운 학문적 재기의 전환점이 되었다.

미국 박사과정 재학 시절, 북미재활공학회에서 포스트 발표중인 김종배 교수. 사진=김종배 교수

나는 미국 유학 중에도 HCI Korea에 참석하려고 노력했다. 귀국 후에는 국립재활원 재활연구소 연구원들과 함께, 연세대학교로 옮긴 뒤에는 연구실 연구원들을 모두 데리고 매년 HCI Korea에서 튜토리얼이나 워크숍 세션을 하나씩 맡아 진행해 왔다.

사지마비 장애인을 세상 밖으로 연결해 주고, 일할 수 있게 하고, 밖으로 나와 다닐 수 있게 한 컴퓨터, 인터넷, 전동휠체어 등의 기술. 바로 이러한 보조기술과 재활공학을 공부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래서 사고로 공부를 완전히 접은 지 16년 만에 재활공학 박사과정이 있는 피츠버그대학교에 진학했다. 미국에 가니 원격으로 장애인과 노인의 주거 접근성을 평가하고 환경수정을 처방하는 시스템인 RAAS를 개발하는 과제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이 시스템을 개발해 하와이대학교와 하와이 주변 태평양 섬들의 직업재활시설 접근성을 평가하는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이어 조지아텍의 존 샌퍼드 교수가 시작한 프로젝트의 세부 과제도 수주하면서 박사과정을 마치고 박사후과정을 거쳐 교수로 임명되었다.

또한 같은 지역에 있는 카네기멜론대학교의 로봇연구원 원장 다케오 카나데 교수와 우리 학과장이자 세계 최대 규모의 재활공학연구소 소장인 로리 쿠퍼 교수가 공동책임을 맡은 10년짜리 미국과학재단 삶의 질 기술 공학연구소(NSF QoLT ERC) 프로젝트에 연구진으로 참여하게 되었다.

다케오 카나데 교수는 전 세계 컴퓨터 비전과 로봇공학의 기틀을 닦은 인물로 평가받고, 로리 쿠퍼 교수는 재활공학의 전설로 불리는 분이다.

이 프로젝트의 주요 성과 중 하나는 장애인을 외부에서 관찰하는 삼인칭 관점보다 장애인 자신이 환경을 바라보는 일인칭 관점에서의 데이터를 주 데이터로 적용하였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장애인 당사자 관점에서 카나데 교수가 FPV(First-Person Vision) 안경을 개발하는 데 기여할 수 있었다.

FPV는 상업적으로 성공하지 못했지만, 훗날 구글 글라스나 메타의 스마트 글라스 같은 웨어러블 기기의 기술적 모태가 되었으며, 현대 인간 중심 피지컬 AI(Human-Centered Physical AI)와 일인칭 비전(Egocentric Vision) 연구의 시발점으로 평가받는다.

■ 국립재활원에서 시작한 장애인 중심 재활공학

김종배 교수(앞줄 가운데)가 2026년 HCI KOREA 학술대회에서 워크숍을 마친 뒤 발표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김종배 교수 제공
김종배 교수(앞줄 가운데)가 2026년 HCI KOREA 학술대회에서 워크숍을 마친 뒤 발표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김종배 교수 제공

그 무렵 한국에서는 국립재활원에 재활연구소가 준공되면서 연구소 책임자로 와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나는 신께 재활공학을 공부할 수 있도록 인도해 달라고 기도하면서, 반드시 한국으로 돌아와 장애인들을 위한 재활공학 기술 발전에 이바지하겠다고 약속했었다.

재활연구소가 문을 열기도 전에 귀국해 직제 구성부터 재활연구사업, 재활로봇중개연구센터 등의 연구 예산을 확보했다. 그리고 재활보조기술연구과 과장으로 중앙보조기기센터, 보조기기품질관리센터, 지역보조기기센터 등을 구축해 나갔다.

특히 '인간친화 복지로봇시스템(Human-Friendly Welfare Robot System)' 연구 프로젝트를 이끄셨던 KAIST 변증남 교수님의 연구를 이어받을 기회도 주어졌다.

대한민국 로봇공학의 대부이자 선구자인 변 교수님은 산업용 로봇에 집중되었던 로봇 연구를 노약자와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의 삶의 질을 높이는 보조·재활 로봇으로 확장하셨다.

교수님은 그동안의 연구 결과물을 국립재활원 재활연구소에 기증하시며 당신의 연구를 이어가 달라고 부탁하셨다.

그리고 서울대학교 이상묵 교수님의 공로로 산업부의 지원을 받은 한국형 QoLT 프로젝트를 같이 추진하게 되면서 미국의 QoLT와 공동 콘퍼런스를 개최하는 등 협력관계도 구축했다.

나는 장애인 보조기기 연구에는 반드시 장애인 당사자가 참여해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이에 장애 유형별로 10개의 포커스그룹을 구축해 운영했다. 국립재활원뿐 아니라 서울대학교와 다른 외부기관에서도 장애인 당사자와 함께 제품을 개발할 수 있도록 지원체계를 마련했다.

또한 보조기기 개발 단계에서 장애인 당사자를 대상으로 사용성 평가를 반드시 실시해야 한다는 신념으로 사용성 평가를 의무화했다.

■ 스스로 먹고, 운동하고, 소통할 수 있도록

김종배 교수가 직접 개발한 스마트 거치대에 태블릿 기기를 부착해 사용하고 있다. 사진=김종배 교수 제공
김종배 교수가 직접 개발한 스마트 거치대에 태블릿 기기를 부착해 사용하고 있다. 사진=김종배 교수 제공

경수 4번 이상 손상으로 목밖에 움직일 수 없는 사지마비 장애인 가운데는 구족화가로 활동하는 분들이 많다.

이분들이 입으로 그림을 그릴 때 붓으로 방향별 근접센서를 터치하면 이젤이 상하좌우로 이동해 그림 작업을 돕는 전동이젤을 개발했다. 이를 구족화가 20명에게 보급했다.

이분들은 식사할 때도 보호자가 먹여드려야 한다. 그래서 숟가락과 젓가락을 양손에 잡고 식사하는 동작을 모티브로, 스스로 식사할 수 있도록 돕는 한국형 듀얼암 식사보조로봇도 개발했다.

나처럼 손으로 무엇을 잡을 수 없어 혼자 운동하기 어려운 사지마비 장애인도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원할 때 바로 운동할 수 있는 실내 핸드바이크를 개발했다.

휴대전화 시대가 열렸지만 손을 사용할 수 없는 사지마비 장애인에게는 휴대전화를 자유롭게 휴대하는 것조차 어려운 일이었다.

이를 위해 휴대전화의 위치를 좌우·상하로 옮기고, 화면을 가로·세로로 돌리며, 전방 각도까지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는 '스마트 거치대'를 개발했다.

국립재활원 재활연구소에서 5년 5개월을 근무한 뒤 모교인 연세대학교로 옮겨서는 자금을 마련해 스마트 거치대 50대를 제작하고 40여 명에게 보급했다.

이제 이분들은 다른 사람들처럼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고, 전화와 문자, 카카오톡, 챗GPT, 인터넷 등을 자유롭게 사용하고 있다.

서울대학교 이상묵 교수님처럼 팔을 전혀 움직일 수 없는 전신마비 장애인들은 스마트 거치대를 설치해도 한 가지 위치와 각도로 고정한 채 마우스 스틱이나 호흡 스위치 등 대체마우스로만 사용할 수 있다.

그래서 이러한 사지마비 장애인들을 위해 관절에 모터를 달아 스마트폰의 위치를 다양하게 조정할 수 있는 로봇시스템도 개발했다.

이처럼 개발한 보조기기가 무수히 많지만 아쉬운 점도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보건복지부 건강보험 급여 대상에 새로운 장애인 보조기기를 포함하기 위한 진입장벽이 높아, 혁신적인 제품이 개발되더라도 제도권에 진입하기가 쉽지 않다. 가격 중심의 급여체계 역시 한계로 지적된다.

대표적인 보조기기인 전동휠체어조차 중국산 저가 제품 위주로 공급되는 현실에서, 성능과 품질이 우수한 제품을 개발해도 실제 보급으로 이어지기 어려운 구조다.

■ 연세대에서 이룬 꿈, 그리고 ‘1층이라도 들어가자’

​KAIST 변증남 교수가 개발한 휠체어 부착형 로봇팔 시스템 ‘KARES’(왼쪽)와 장애인의 신체 특성에 맞춰 제작하는 맞춤형 착석 보조장치. 사진=김종배 교수 제공​
​KAIST 변증남 교수가 개발한 휠체어 부착형 로봇팔 시스템 ‘KARES’(왼쪽)와 장애인의 신체 특성에 맞춰 제작하는 맞춤형 착석 보조장치. 사진=김종배 교수 제공​

다치기 전 대학생 시절 가슴에 품었던 소망이 마침내 이루어졌다. 재활공학 전문가로서 연세대학교 교수가 된 것이다.

13년간 연구과제 20여 건, 특허 20여 개, 기술이전 5건, 100여 편의 논문에 이름을 올렸고, '교원창업'까지 도전하며 지난 8월 31일 정년퇴임했다.

대학교에 와서는 하반신이 마비된 장애인들이 가장 많이 하는 스포츠 중 하나인 도로 주행용 핸드사이클을 개발했다.

핸드사이클연맹의 요청으로 공기역학적 설계를 적용하고 풍동시험까지 거쳐 상용화했다.

또한 EVA 소재를 활용해 '세계에서 가장 가벼우면서도 내구성이 있는 경사로'를 개발했다.

가게 입구의 턱을 없애 휠체어가 1층 상점에 들어갈 수 있도록 하는 'FFF(First Floor Free!) 경사로'다. '1층이라도 들어갈 수 있게 하자'는 의미를 담았다.

학생들과 함께 'FFF 동아리'를 만들어 학교 앞 상가지구와 원주시내 상가지구, 서울 청와대 옆 효자동과 명동에도 경사로를 설치했다.

'1층이라도 들어가자'는 캠페인은 장애인의 이동권을 기술로 실현하려는 재할공학의 의지였다.

■ 28년 만에 다시 만난 올림픽의 꿈

김종배 교수가 2018 평창 동계패럴림픽 장애인아이스하키 경기장에서 스마트 거치대에 부착된 태블릿으로 경기를 중계하고 있다. 사진=김종배 교수 제공

그리고 평창올림픽이 운명처럼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KAIST 입학 당시 3개월간 혹독한 전산전문가 과정을 훈련받았다. 석사과정 4학기째, 졸업논문만 남겨두고 88서울올림픽 전산화팀에 본격적으로 투입되려던 시점에 사고를 당했다. 그 사고로 공부도, 올림픽의 꿈도 모두 접어야 했다.

그런데 28년이 흐른 뒤 강원도 원주에 오니 평창올림픽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못다 이룬 꿈을 다시 이루려는 듯 평창올림픽과 패럴림픽을 위한 10가지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모든 올림픽 경기시설의 장애인 접근성을 점검하고, 강원도 주요 도시의 관광지와 가게에 FFF 경사로를 설치했다. 미국 국무부의 지원을 받아 미국에서 온 장애인 스키 강사들과 장애아동 스키캠프를 개최했고, 장애인 스포츠과학 국제심포지엄도 열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휠체어 장애인의 욕창 예방을 위해 개발한 '오프로딩 시팅' 기술을 적용해 패럴림픽 국가대표 선수들에게 '맞춤형 스포츠 시팅'을 제작해 공급한 일이었다.

2018 평창 동계패럴림픽에서 김종배 교수가 개발한 맞춤형 버킷을 사용해 금메달을 획득한 신의현 선수(왼쪽)와 김 교수가 개발한 맞춤형 시트와 버킷을 사용해 장애인아이스하키 동메달을 이끈 대표팀 주장 한민수 선수. 사진=김종배 교수 제공

우연일까?

평창 패럴림픽에서 메달을 딴 선수들은 모두 우리 연구실에서 개발한 '맞춤형 스포츠 시팅'에 앉아 경기했다.

금메달을 목에 건 노르딕스키의 신의현 선수와 동메달을 딴 아이스하키팀 선수 12명 모두가 그랬다.

■ 정년퇴임은 끝이 아닌, 또 다른 산을 향한 출발

나는 사고 이후 16년간의 공백이 있었기에 두 달 전 정년퇴임한 뒤에도 작업치료학과 객원교수로 다시 발령받았다. 현재 좌우 틸트 기능을 추가한 '6축 시팅 전동휠체어' 개발을 계속하고 있으며, '장애의 이해'와 '보조공학' 수업도 이어가고 있다.

또한 연세대학교 복합재활기술연구소(소장 정민예)의 재활공학소장으로서 두 개의 큰 재활공학의 산을 향한 등반계획을 세우고 있다.

하나는 '전기차 및 자율주행자동차 시대의 중증장애인 자가운전 시스템' 개발이다. 다른 하나는 '피지컬 AI를 적용한 로봇 팔이 달린 전동휠체어 로봇시스템' 개발이다. 이 두 개의 새로운 봉우리를 향해 등반계획을 세우며 하산을 준비하고 있다.

이제 해외여행이 학생들에게도 낯설지 않은 시대다. 그래서 수업 시간에 학생들에게 항상 이야기한다.

“대개 학술대회는 세계적인 관광지에서 개최되니, HCI Korea나 RESNA 같은 학술대회에 참가해 관광도 즐기고 나 자신의 산을 향한 등정을 시작해 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