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애인계의 숙원이었던 장애인권리보장법이 제정되었다. 지난 4월 23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고, 정부에 이송되어 5월 26일자로 대통령의 공포가 있었다.
기존 법률이 ‘장애로 인한 불편을 어떻게 달래줄 것인가’에 초점을 맞췄다면, 권리보장법은 장애인이 겪는 제약이 개인의 신체적 결함이 아닌 ‘사회적 장벽’에서 기인한다는 사회적 모델을 분명히 한다. 따라서 장애인 지원은 국가의 자선이 아니라, 시민으로서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를 보장하는 의무가 된다.
오랜 시간 싸워온 장애인 단체들은 일제히 환영의 뜻을 밝혔다. "드디어 우리를 시혜의 대상이 아닌 온전한 권리의 주체로 인정하는 법적 울타리가 생겼다"는 감격어린 평가가 주를 이뤘다.
장애인권리보장법 제정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다. 이 법은 단순히 장애인만을 위한 혜택 늘리기 법안이 아니다. 우리 사회가 소수자를 어떻게 대하고 동등한 시민으로 대접할 것인가에 대한 성숙도를 보여주는 척도다.
그러나 이 법을 자세히 뜯어보면 환영할 수만은 없는 문제점도 드러나고 있다. 특히 장애영향평가가 도입의 취지와 다르게 그 대상이 장애인 정책에 한정됨으로써 해당 조항이 유명무실해졌고, 오히려 왜곡되었다는 지적까지 낳고 있다.
사실 장애인권리보장법이 장애인복지법과 중첩되는 사항과 시혜에서 권리라는 개념적 변화를 제외하면 새로 도입되는 제도가 생각보다 많지 않은 상황에서 모처럼 도입하려 했던 장애영향평가가 제 구실을 하기 어렵게 된 것이다.
진정한 장애인권은 장애인복지예산의 규모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도시 하나를 설계할 때, 관광지 하나를 조성할 때, 공공시설 하나를 건립할 때 장애인의 접근과 이용을 당연한 전제로 삼는 사회 구조 속에서 비로소 실현된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등장한 개념이 ‘장애영향평가제도’다. 말 그대로 어떤 정책이나 사업이 장애인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사전에 검토하는 제도다. 환경영향평가가 자연환경 훼손 여부를 미리 따져보듯, 장애영향평가는 도시와 시설, 정책이 장애인을 배제하지 않는지를 사전에 살펴보자는 취지다.
이 문제는 현실에서 매우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전국 지방자치단체들은 방문객 유치와 지역경제 활성화를 이유로 대규모 관광개발 사업을 끊임없이 추진한다. 출렁다리와 테마파크, 생태공원과 전망대, 케이블카와 둘레길 조성사업에 수천억원 또는 수백억 원의 예산이 투입된다. 개장 초기에는 화려한 홍보와 함께 관광객 유치 성과가 강조된다. 그러나 시간이 조금 지나면 거의 예외 없이 같은 문제가 반복된다.
“휠체어 접근이 어렵다.” “케이블카는 전동휠체어 탑승이 불가능하다.”, “전망대에 경사로나 엘리베이터가 없다.” “경사로가 너무 가파르다.”
그런데 이미 콘크리트는 굳어져 시설은 완공되었고 예산은 집행된 뒤다. 그때부터는 모든 것이 어려워진다. 추가 예산이 필요하고, 구조 변경 논란이 생기며, 안전 문제와 경관 훼손 논쟁이 뒤따른다. 예산을 투입해도 이미 구조상 개선이 불가능한 경우도 많다. 결국 장애인 접근성 개선은 “나중에 검토할 문제”로 밀려난다.
만약 개발 초기 단계에서 제대로 된 장애영향평가가 이루어졌다면 상당수 문제는 사전에 해결됨은 물론 예산낭비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일반행정 영역에서 장애영향평가 기능이 작동하지 못하면서, 장애인 접근권 문제는 늘 사후 민원과 갈등의 형태로 반복되고 있다. 처음부터 장애인을 사회 구성원으로 포함하여 설계하지 않은 사고방식의 문제다.
그러나 모처럼 제정된 법령에서는 장애영향평가가 “장애인 관련 정책” 중심으로 좁혀져 버렸다. 장애영향평가제도가 일반행정 전체를 실질적으로 포괄하지 못한다면, 그 법은 장애인 문제를 다시 복지행정 안으로 가두는 결과를 낳게 된다.
다시 말해 장애인 복지사업이나 장애인 대상 정책에는 영향평가를 요구하면서도, 정작 대규모 관광개발이나 도시개발 같은 일반행정 영역에서는 장애인의 관점이 반영될 통로가 사라져버린 것이다.
이 대목에서 묘한 역설이 발생한다. 사실 장애인을 위한 정책개발이 그 추진은 그 자체가 장애인에게 미치는 영향을 이미 포함하고 있기때문에 오히여 이 영역에서는 별도의 장애영향평가가 필요 없다. 그런데도 장애영향평가 절차 때문에 행정 부담과 시간이 늘어나 오히려 정책 추진에 장애물이 될 우려가 있다. 오히려 본질이 왜곡된 채 ‘독소조항’으로 전락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게 됐다. 뼈아픈 실책이 아닐 수 없다.
원래 국회 최보윤 의원 등이 2024년도에 발의한 장애인권리보장법안 장애영향평가 조항에는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는 장애인의 인권 보장과 차별 해소에 기여할 수 있도록 각종 법령, 정책 또는 예산을 수립하거나 시행하는 과정에서 장애인에게 미칠 영향을 평가하여야 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이 내용이 그대로 반영되었더라면 정말 좋았을 것이다.
그러나 작년 8월과 금년 2월에 법안심사소위원회를 통해 보건복지위원장 대안으로 바뀌면서 장애인 관련 정책을 수립하거나 시행하는 과정에서만 영향평가를 하는 것으로 축소된 것이다. 그 과정에서 장애계의 절박한 환경을 어떻게 인식했을까? 참으로 아쉬운 대목이다.
사회적 여건상 전면 수용에 어려움이 있다면 영향평가의 대상을 대통령령으로 위임하고 시행령에서 그 대상을 열거하면서 단계적으로 확대하는 방법을 택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예를 들면 시행 초기에는 “관광지 개발에 관한 사항으로서 500억원 이상의 예산이 투입되는 경우” 등으로 열거하고, 여건이 성숙되면 시행령 개정을 통해 대상 분야와 범위를 확대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 제정법은 그런 제도적 최소한의 장치마저 마련되지 못했고, 영향평가 의무대상으로 규정하지 않아도 될 장애인 관련 정책에 대해서만 본법에 한정함으로써 오히려 취지를 왜곡한 것이다.
이번에 제정된 장애인권리보장법은 공포 후 2년이 지나서 시행된다. 그사이 시행령과 시행규칙이 제정될 것이다. 그 사이에 이 법률의 문제 조항을 개정해서라도 장애영향평가 제도의 본래 취지를 살려야 한다.
조봉현 전문기자bh1958@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