휠체어 명소 탐방기 ㉛ - 순천 낙안읍성
순천의 서쪽, 금전산(金錢山)의 품에 아늑하게 안긴 낙안읍성으로 향하는 길은 도시의 소란함을 잠재우는 수행의 길과 같다. 호남고속도로 승주 IC를 빠져나와 굽이굽이 이어지는 상사호의 물줄기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덧 창밖으로 현대적인 건물 대신 나지막한 돌담과 둥근 초가들이 고개를 내민다. '즐겁고 편안하다'는 그 이름처럼, 마을 입구에 들어서는 것만으로도 팽팽했던 마음의 긴장이 풀리는 것 같다. 바로 낙안읍성이다.
이곳은 단순히 관람을 위해 조성된 민속촌이 아니다. 실제로 주민들이 초가집 아래 대를 이어 거주하며 밭을 일구고 지붕을 이는, 살아있는 마을이다. 뿐만 아니라 관광객들에게 민박장소로 제공하기도 한다.
낙안읍성의 견고한 석성은 1626년 군수로 부임한 임경업 장군의 손길에서 완성되었다. 그는 1397년에 조성한 기존의 토성을 허물고 석성으로 개축했던 것이다. 낙안읍성이 오늘날까지 그 형태를 온전히 유지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임경업 장군이 쌓은 돌성곽 덕분이다. 주민들은 지금도 그를 마을의 수호신으로 여기며 정월 대보름마다 비각 앞에서 선정을 기리고 제를 올린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매표소로 향하는 길은 과거로 넘어가는 짧은 터널 같다. 휠체어 바퀴가 구르기 좋도록 평탄하게 잘 닦인 이 길은, 방문객을 가장 먼저 맞이하는 벅찬 설렘의 구간이다. 이어서 웅장한 성벽이 마을을 포근하게 감싸 안은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무장애 통로를 따라 매표를 마치고 나면, 드디어 조선의 대문이 열린다.
낙민루를 지나 동헌 마당으로 이어지는 길은 평평하고 너른 길이다. 백성의 억울함을 달래주던 낙민루의 북소리가 들리는 듯하고, 고을 수령이 정무를 보던 동헌은 단아한 기품을 유지하고 있다.
전시관 안으로 들어서면 낙안읍성이 견뎌온 세월의 기록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이어지는 객사 뜰에서는 묵직한 고목들이 드리운 그늘 아래서 잠시 숨을 고르며, 옛 나그네들이 머물다 간 자리의 온기를 느껴본다.
남문(쌍청루) 가는 길은 곧게 뻗어 있다. 노면이 고르고 시야가 탁 트여 있어, 휠체어를 타고 이동하면서도 마을의 전체적인 실루엣을 감상하기 좋다.
낙민루와 관아의 모습
돌담과 연자방아
낙안읍성을 석성으로 구축한 임경업 장군의 비각과 초상
전시관의 전시물넓은 도로를 살짝 벗어나 마을 안길로 스며들면, 낙안읍성의 진짜 얼굴인 '삶'의 풍경이 나타난다. 나지막한 돌담 골목길 사이로 정겨운 사립문이 보이고, 그 너머 장독대 위에는 정갈한 햇살이 내려앉아 있다.
물줄기에 의존하여 돌아가는 물레방아와 아낙네들의 웃음소리가 배어 있는 빨래터는 이 마을이 박제된 민속촌이 아니라, 여전히 뜨거운 심장이 뛰고 있는 터전임을 일깨워준다. 3월 초에 방문한 낙안읍성은 군데군데 매화꽃이 피어 있었다. 특히 홍매화 정원에는 가장 먼저 봄을 알리는 전령사처럼 붉게 물든 홍매화가 방문객을 맞이한다.
성곽 위를 걷는 사람들의 실루엣이 하늘과 맞닿아 있다. 그 아래로 새로운 이엉으로 갈아입은 초가지붕들은 마치 땅 위로 내려앉은 황금빛 구름 같을 것이다.
읍성의 생명은 성곽길이다. 성곽길로 올라가는 통로는 여러 곳에 있지만 모두 계단이다. 휠체어 이용자가 올라갈 수 있는 통로가 없다는 것이 너무 아쉽다. 이곳은 문화체육관광부가 지정한 열린관광지다. 휠체어 등을 이용하는 관광약자들에게도 다른 관광객처럼 성곽길 접근성을 보장해야 진정한 열린관광지가 될 것이다. 순천시는 개선책을 마련해야 한다.
개선할 부분은 몇 군데 더 발견되었다. 관아 건물 옆에는 널따란 잔디광장 한켠에 초가집을 배경으로 무대가 있다. 문화행사 등을 하는 놀이마당이다. 그런데 무대에 오르는 길은 계단뿐이다. 이동약자용 경사로도 마련되었으면 좋겠다. 요철이 발생하는 일부 노면도 개선이 필요하다.
낙안읍성을 초겨울에 방문하면 이엉으로 지붕잇기를 하는 모습들을 마주하게 된다. 볏짚을 엮어 만든 '이엉'으로 낡은 지붕을 새롭게 단장하는 이엉잇기는 단순한 보수작업을 넘어 공동체의 결속을 다지는 의식이다. 지붕 꼭대기에서 비가 새지 않도록 단단히 여미는 '용마름' 작업은 수백 년간 이어져 온 민초들의 지혜다.
사립문과 초가 안채의 모습
물레방아와 빨래터
낙안읍성 봄의 전령사, 매화꽃
성곽길 오르는 통로는 계단뿐이라서 관광약자는 성곽길 접근이 불가능하다.낙안읍성은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에도 등장한다.
이순신 장군의 무적함대는 원균으로 지휘권이 넘어가면서 칠전량 해전에서 괴멸했다. 백의종군하던 장군은 최전선인 합천에서 삼도수군통제사로 다시 임명을 받았다. 그리고 그곳에서 곧바로 수군 재건의 긴박한 여정에 오른다. 아무런 보급품도 없이 단 6명의 군관과 3명의 병사로 출발했다.
진주 → 하동 → 구례 → 곡성 → 순천(무기 확보) → 낙안 → 보성(군량 확보) → 장흥 회령포(12척의 전함 수습) → 강진 → 해남(어란진) → 진도(벽파진)에 이르기까지 인력과 무기와 군량을 모으면서 대장정을 이어갔다.
그리고 벽파진에서 진용을 갖춘 바로 다음 날, 명량으로 이동하여 단 13척의 배로 133척의 왜선을 격파하는 명량대첩을 거두었던 것이다. 이로써 해로를 통한 왜군의 북진을 한번도 허용하지 않았고, 결국 왜군은 전쟁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난중일기 1597년 8월 9일(음력)의 기록에는 낙안에 도착했을 때 성민들이 장군을 구세주로 여기며 눈물로 맞이하는 모습을 생생하게 전하고 있다.
“날씨는 맑았다. 일찍 떠나 낙안에 이르니 5리 밖까지 많은 사람들이 마중을 나왔다. 관청과 창고와 병기는 모두 타 버렸다. 관리와 백성들도 눈물을 흘리지 않고 말하는 이가 없었다. (중략) 점심 후 길을 떠나 10리쯤 가니 사람들이 길가에 늘어서서 다투어 술병을 가져다 바치는데 받지 않으면 울면서 권했다. 저녁에 보성 조양창에 이르렀다. (이하 생략)”
당시 이 지역은 왜군이 오지도 않았는데 왜군들에게 물자가 넘어가는 것이 염려되어 싸워보지도 않고 스스로 마을을 불태우는 '청야책'으로 성안은 폐허가 되어 있었다.
장군은 성안의 비참한 모습에 통탄했으나, 난리통에 어렵게 술까지 구해와서 제사상에 제주 올리듯 울면서 매달리는 백성들을 보며 수군 재건의 희망을 걸었을 것이다. 그리고 상당수의 백성들은 수군에 자원입대를 했을 것이다.
장군의 경로에서 백성들의 환영을 받지 않았던 곳이 있었겠느냐만, 재건행군 한 달간의 일기에는 백성(난민상태였을 것이다)들과 만나는 감회를 적은 것은 낙안에서의 기록이 유일하고 보면, 그만큼 각별했던 낙안군 민초들의 장군에 대한 신뢰는 장군에게도 엄청난 힘이 되었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겨우 9명으로 출발한 수군 재건 경로에서 불과 한 달간의 짧은 시간에 13척의 전함을 운용하고 전투를 할 수 있는 수많은 병력을 모으는 원동력이 되었다. 그리고 곧바로 명량대첩을 통해 나라를 구했다.
필자는 읍성 골목길을 거닐면서 이순신 장군과 당시 성민들의 우국정신을 그려봤다.
난중일기 1597년 음력 8월 9일자 원문 내용(원문은 초서로 되어 있으나 이해를 돕고자 해서로 바꿨으며, 점을 찍고 문단을 나누었다.)
난중일기 1597년 음력 8월 9일자 해석 내용낙안읍성을 방문했다면 인근의 '순천시립 뿌리깊은나무 박물관'도 놓치지 말자. 낙안읍성과 연계해 둘러보기 좋은 장소다. 이 박물관은 잡지 '뿌리깊은 나무'와 '샘이 깊은 물'을 창간했던 고 한창기 선생이 생전에 수집한 유물들이 전시된 곳이다.
낙안읍성이 조선시대의 외형적 구조를 보여준다면, 이곳은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손때 묻은 유물들을 통해 내면의 문화를 보여준다. 이곳도 휠체어 이용자를 포함한 모든 관람객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모든 동선은 무장애 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다.
한창기 선생이 수집한 청자, 백자, 민속품 등 600여 점의 유물이 전시되어 있어 우리 민족의 기품 있는 미의식을 느낄 수 있다. 박물관 주변의 정원과 야외 공간 역시 고즈넉하게 조성되어 있어 낙안읍성의 정취를 이어가며 산책하기에 좋다.
낙안읍성 인근에는 '돌탑공원'이라 불리는 독특한 명소가 있다. 이곳은 낙안읍성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해 있어 함께 둘러보기 좋다. 이곳은 최찬식 옹이라는 개인이 20여 년이 넘는 세월 동안 홀로 돌을 쌓아 올린 곳이다. 가족의 안녕과 마을의 번영을 기원하며 쌓기 시작한 돌탑들이 모여 현재는 거대한 탑들의 군락을 이루고 있다. 단순한 돌무더기가 아니라 정교하게 균형을 맞춘 수많은 돌탑이 장관이다.
돌탑공원의 가장 대표적인 작품들은 우리나라의 상징적인 성문들을 정교하게 재현한 것들이다.
국보 1호 남대문의 모습을 한 작품은 생각보다 큰 규모로 제작되어 관람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준다. 남대문과 함께 나란히 조성된 광화문 돌탑 역시 실제 건물의 비례를 세심하게 고려하여 돌을 켜켜이 쌓아 올린 완성도 높은 조형물이다.
고흥 나로우주센터에서 발사된 나로호를 형상화한 작품도 있다. 높이가 약 6m에 달하고 우주를 향한 염원을 담아 솟아오른 듯한 이색적인 풍경을 자아낸다.
이 공원에는 우리 민족의 가장 큰 염원인 평화와 화합을 상징하는 ‘한반도 모형 평화통일 돌탑’이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갈라진 남과 북이 하나로 이어지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을 수많은 돌 하나하나에 담아 쌓아 올린 것이다.
광화문, 남대문 등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상징물들과 함께 어우러져, 이곳을 찾는 관람객들에게 민족의 정체성과 평화 통일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일깨워주는 역할을 한다. 낙안읍성의 초가집 풍경과는 또 다른 이색적이고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내어 사진 촬영지로도 인기가 높다. 낙안읍성 주출입구에서 불과 500여 미터의 거리에 있다.
낙안읍성의 역사적인 정취를 즐긴 후, 한 사람의 끈기와 정성이 빚어낸 이 이색적인 돌탑 정원을 함께 둘러보면 더욱 풍성한 여행이 될 것이다.
낙안읍성의 이동약자를 위한 시설들
요철이 심한 노면과 무대접근이 어려운 이동약자 불편시설은 개선이 필요하다.
광화문과 남대문 등을 형상화 한 돌탑공원 돌탑들
나로호와 한반도를 형상화 한 돌탑
음양의 조화를 이루는 남녀간의 모습
상록수와 돌탑이 어울어진 공원의 풍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