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츠버그의 교육 정신을 다시 보다

미국 피츠버그신학교 전경. 언더우드 선교사와 미국 북장로교의 한국 선교 역사를 떠올리게 하는 공간이다. (사진=피츠버그대학교 최용경 교수 제공 / 김종배 교수 전달)
미국 피츠버그신학교 전경. 언더우드 선교사와 미국 북장로교의 한국 선교 역사를 떠올리게 하는 공간이다. (사진=피츠버그대학교 최용경 교수 제공 / 김종배 교수 전달)

이전에 피츠버그대학교에 있을 때는 ‘배움의 전당’이나 그 안의 커먼스룸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자세히 알지 못했다. 멜론을 비롯한 산업도시 피츠버그의 부호들뿐 아니라 시민들의 동전 모금까지 더해졌다는 그 진심의 배경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그런데 교육시설에 투자하는 피츠버그의 정신은, 피츠버그에서 한국 땅으로 보내진 선교사들을 통해서도 그대로 실현되었다. 이 묘하고도 필연적인 역사의 순환 앞에서 깊은 경외감이 느껴졌다.

우리 가족은 처음 미국에 왔을 때 한인교회를 조금 다니다가 미국 교회를 다녔다. 미국에 왔으니 미국 교회를 경험해보고 싶었다. 피츠버그는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중반까지 전 세계 철강산업의 중심지였다. 철강소에서 일하기 위해 독일, 아일랜드, 이탈리아, 폴란드와 슬로바키아 등 동유럽에서 수많은 이민자 노동자들이 몰려들었다.

그래서 거리를 지나다 보면 한 블록마다 카톨릭, 그리스정교, 장로교, 침례교 등 다양한 종파의 교회와 유대교 회당까지 쉽게 볼 수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교회에는 교인이 많지 않아 보였다. 어떤 교회 앞 잔디밭에는 ‘FOR SALE’이라는 푯말이 세워져 있기도 했다.

심지어 피츠버그 로렌스빌 지역의 한 교회 건물은 개인에게 팔려 ‘더 처치 브루 웍스(The Church Brew Works)’라는 맥주집이 되었다. 맥주 양조 탱크가 제단과 강단이 있던 자리에 올라가 있고, 유서 깊은 석조건물과 스테인드글라스, 교회 의자와 탁자를 그대로 살려 리모델링한 공간이라고 한다. 주민과 관광객들이 맥주를 마시며 즐기는 장소가 되었다지만, 기독교인의 한 사람으로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았다.

샤디사이드 교회와 피츠버그신학교

피츠버그 샤디사이드 지역의 샤디사이드 프레스비테리언 교회. 석조 외관과 고풍스러운 분위기가 미국 북장로교 선교 전통의 흔적을 보여준다. (사진=최용경 교수 제공 / 김종배 교수 전달)
피츠버그 샤디사이드 지역의 샤디사이드 프레스비테리언 교회. 석조 외관과 고풍스러운 분위기가 미국 북장로교 선교 전통의 흔적을 보여준다. (사진=최용경 교수 제공 / 김종배 교수 전달)

내가 처음 피츠버그에 와서 살던 샤디사이드 지역은 크고 좋은 주택들이 많은 곳이었다. 산책길에서 만난 아름다운 교회가 바로 샤디사이드 프레스비테리언 처치, 장로교회였다.

많은 미국 교회가 쇠락했지만, 이 교회는 건물도 크고 관리도 잘 되어 있었다. 영어 실력이 뛰어나지 않아 설교를 모두 이해하지는 못했다. 그래도 다친 이후 성경통독을 신앙의 한 방법으로 삼아왔고, 미국에 온 뒤에는 영어 공부도 할 겸 영어성경을 읽어왔기에 설교 내용은 대략 짐작하며 들었다.

나중에 프린스턴신학교 총장이 된 크레이그 반스 담임목사님은 설교 중 꼭 한 번씩 조크를 던지곤 했다. 유머에는 사회적·지리적·역사적·문화적 맥락이 압축되어 있어, 이방인인 내가 이해하기는 쉽지 않았다. 주변 교인들이 크게 웃음을 터뜨리면 표정 관리가 난처할 때도 있었다.

부목사였던 칼슨 목사님은 교인 돌봄을 담당했는데, 매우 젠틀했고 외국인인 우리 가족을 참 친절하게 맞아주었다. 그 교회는 편안했고 쉼을 주었다. 설교를 잘 못 알아들어서 더 그랬는지도 모른다.

그러던 어느 날 근처에 피츠버그신학교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 부부는 박물관, 정원, 건축물, 대학 캠퍼스를 둘러보는 것을 좋아했기에 한 번 피츠버그신학교를 찾아가 보았다.

학교는 크지 않았고 특별히 화려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작은 도서관을 구경하다 눈에 확 들어오는 책들이 있었다. 미국 북장로회의 한국 선교 역사를 기록한 책들이었다. 반가운 마음에 책을 빼 들고 넘겨보니, 한국 선교의 역사 곳곳에 연희전문학교 이야기가 있었다. ‘언젠가 시간을 내서 꼭 다시 와 봐야겠다.’ 그렇게 마음먹고 나왔다.

미국 북장로교 해외선교부가 발행한 한국 선교 관련 서적 『The Korea Pentecost』 표지. 피츠버그신학교 도서관에서 만난 한국 선교 기록은 언더우드 선교사와 연희전문학교, 세브란스의 설립·발전 과정을 다시 돌아보게 했다. (자료=Internet Archive / 김종배 교수 제공)
미국 북장로교 해외선교부가 발행한 한국 선교 관련 서적 『The Korea Pentecost』 표지. 피츠버그신학교 도서관에서 만난 한국 선교 기록은 언더우드 선교사와 연희전문학교, 세브란스의 설립·발전 과정을 다시 돌아보게 했다. (자료=Internet Archive / 김종배 교수 제공)

욕창 때문에 머문 신학교 게스트룸

그런데 시간을 내야 할 사건이 생겼다.

사지마비의 몸으로 미국에 오면서 휠체어에서 비행기 좌석으로 옮겨 앉을 때 문제가 생겼다. 바지 속에 있던 허술한 소변 수집 시스템이 잘못되어 실금이 된 채 10시간을 앉아 온 것이다.

좁은 항공기 좌석에서, 젖은 바지 상태로, 10시간 동안 엉덩이를 전혀 들 수 없었다. 그 고통스러운 비행시간을 지나며 앉을 때 가장 압력이 집중되는 좌골결절 부위의 피부와 살이 무너졌다. 이른바 욕창이 시작된 것이다.

시간만 나면 엎드려 있기도 했지만, 미국까지 와서 공부를 시작한 이상 항상 누워 있을 수는 없었다. 욕창전문간호사가 집으로 와 음압기와 각종 좋은 제품으로 치료해주었지만, 최상의 치료는 앉지 않고 누워 있는 것이었다.

내가 누워 있으면 가족들도 나를 두고 나가지 못했다. 모두를 힘들게 하는 일이었다. 그래서 이 기회에 피츠버그신학교 게스트룸을 며칠 예약해, 누워서 보고 싶던 한국 선교 역사 기록을 읽으며 시간을 보내보기로 했다.

미국 북장로교의 한국 선교 역사는 한마디로 연세대학교의 전신인 연희전문학교의 설립과 운영, 발전의 역사였다. 피츠버그의 배움의 전당, 멜론연구소, 하인즈채플 같은 교육문화유산에 담긴 교육에 대한 진심이 한국 선교 역사 속에도 이어져 있었다.

피츠버그의 교육시설에 카네기, 멜론, 하인즈, 프릭 같은 산업 부호들의 진심이 있었다면, 언더우드를 통해 세워진 연세대의 석조건물들에는 샤디사이드 교회를 주축으로 한 미국 교회 교인들의 신앙과 진심이 담겨 있었다.

언더우드, 피츠버그에서 한국으로 이어진 길

연세대학교 신촌캠퍼스 언더우드 동상 앞에 선 김종배 교수. 피츠버그에서 시작된 미국 북장로교의 한국 선교와 언더우드의 교육 선교는 오늘날 연세대학교의 뿌리로 이어졌다. (사진=김종배 교수 제공)
연세대학교 신촌캠퍼스 언더우드 동상 앞에 선 김종배 교수. 피츠버그에서 시작된 미국 북장로교의 한국 선교와 언더우드의 교육 선교는 오늘날 연세대학교의 뿌리로 이어졌다. (사진=김종배 교수 제공)

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 선교사는 1885년 4월 5일 부활절 아침, 감리교의 아펜젤러 선교사 부부와 함께 제물포, 지금의 인천을 통해 한국 땅에 첫발을 디뎠다.

언더우드는 알렌 선교사가 고종의 허락을 받아 막 개원한 제중원, 즉 광혜원에서 물리와 화학을 가르치는 교사이자 의료 보조로 공식 활동을 시작했다. 이것이 훗날 세브란스 의과대학으로 발전하는 의료 선교의 시초였고, 언더우드가 한국 근대 고등교육에 발을 들인 첫 순간이었다.

언더우드가 한국에서 복음·의료·교육 선교를 지속할 수 있었던 것은 혼자의 힘이 아니었다. 피츠버그신학교 출신의 수많은 젊은 신학생들이 언더우드의 선교 보고와 도전에 감동받아 한국 선교사를 자처했다.

이들은 한국에 들어와 언더우드가 세운 연희전문학교와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에서 성서학, 철학, 영문학 등을 가르치는 교수진으로 활약하며 학교의 학문적 기틀을 다졌다. 언더우드가 뿌린 씨앗에 피츠버그신학교 출신들이 물을 준 셈이다.

한국에 종합대학교를 만들겠다는 꿈을 품고 평생을 헌신한 언더우드 선교사는 미국 북장로교 소속이었다. 그리고 피츠버그신학교는 바로 그 북장로교 선교의 중심지이자 심장부였다.

미국의 거대 철도차량 제조회사 볼드윈 로코모티브 웍스의 회장이자 샤디사이드 교회의 장로였던 존 콘버스는 1910년 세상을 떠나기 전, 언더우드의 한국 대학 설립 계획에 깊이 공감해 거액의 유산을 기부했다.

언더우드 선교사도 과로와 병환으로 미국에 돌아와 치료를 받다 별세했다. 그의 아들 원한경 선교사와 후임자들은 언더우드의 뜻을 이어, 콘버스의 유산 기금과 샤디사이드 교인들이 모은 기금을 바탕으로 1917년 경기도 고양군 연희면 신촌리, 지금의 신촌 캠퍼스 부지 일대 약 30만 평을 매입할 수 있었다.

오늘날 연세대학교 신촌 캠퍼스의 상징이자 본관단지를 이루는 스팀슨관, 아펜젤러관, 언더우드관 등 아름다운 석조건물들은 언더우드가 뿌린 미국 기독교 자본과, 타자기 사업으로 큰 자본을 축적한 형 존 언더우드의 전폭적인 기부로 1920년대 초반 완공되었다.

다시 피츠버그에서, 언더우드를 소환하다

카네기멜론대학교 뉴웰-사이먼홀 전경. 인공지능 연구의 선구자인 앨런 뉴웰과 허버트 사이먼의 이름을 딴 이 건물은 피츠버그가 컴퓨터사이언스와 AI, 로보틱스의 중심지로 성장한 상징적 공간 중 하나다. (사진=김종배 교수 제공)
카네기멜론대학교 뉴웰-사이먼홀 전경. 인공지능 연구의 선구자인 앨런 뉴웰과 허버트 사이먼의 이름을 딴 이 건물은 피츠버그가 컴퓨터사이언스와 AI, 로보틱스의 중심지로 성장한 상징적 공간 중 하나다. (사진=김종배 교수 제공)

140여 년 전부터 피츠버그를 비롯한 미국 장로교인들이 보낸 뜨거운 영성과 후원으로, 언더우드 선교사는 한국 최초의 서양식 고등교육기관인 연세대학교의 뿌리를 싹 틔웠다. 그리고 그 대학의 교수가 된 나는 이제 세계 최고의 재활공학과 AI의 현장을 목격하기 위해 다시 그 피츠버그에 와 있다.

오후 3시에는 카네기멜론대학교로 간다. 세계 최고의 컴퓨터사이언스, 로보틱스, HCI 연구그룹과 만나 재활공학에 Physical AI를 입히기 위한 협력 관계를 구축하기 위해서다.

카네기멜론대학교 캠퍼스 내부 공간. 피츠버그는 컴퓨터사이언스와 로보틱스, Physical AI 연구의 중심지로 꼽힌다. 자료=카네기멜론대학교 홈페이지 갈무리
카네기멜론대학교 캠퍼스 내부 공간. 피츠버그는 컴퓨터사이언스와 로보틱스, Physical AI 연구의 중심지로 꼽힌다. (사진=카네기멜론대학교 홈페이지 갈무리/김종배 교수 제공)

140년 전 언더우드 선교사를 통해 피츠버그로부터 서양 학문이 한국에 본격적으로 들어왔다. 이제는 피츠버그로부터 다시 세계 최고의 Physical AI와 로보틱스, 재활공학 기술을 한국에 들여오고자 한다.

그래서 나는 언더우드 선교사를 피츠버그에서 다시 소환하고 싶다. 그가 시작한 한국의 대학교육 현장에, 카네기멜론대학교의 세계 최고 AI 기술과 피츠버그대학교의 완벽한 장애인 접근성까지 함께 가져와 달라고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