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지방법원 안양지원. ⓒ네이버 지도
수원지방법원 안양지원. ⓒ네이버 지도

전동휠체어에 탑승해 횡단보도를 건너다 보행자와 충돌한 장애인에게 내려진 벌금 500만 원 약식명령에 대해 무죄 판결이 내려졌다.

수원지방법원 안양지원 형사2단독(판사 유혜주)은 22일 휠체어 충돌 사건 형사처벌 500만 원 약식결정에 대한 정식재판에서 무죄를 판결했다.

판결 직후 진행된 기자회견에서 장애인차별금지연대(이하 장추련) 김성연 사무국장은 “좋은 결과가 나와 너무 기쁘다. 법원이 현명한 판단을 내린 것에 대해 적극적으로 환영한다”고 밝혔다.

장추련에 따르면 피고인 A씨는 파킨슨병을 앓고 있는 휠체어 이용 장애인으로 약 8년 동안 전동휠체어를 사용하고 있다.

A씨는 지난 2021년 10월 14일 경기도 군포시에서 전동휠체어를 타고 횡단보도를 건너다가 옆에서 함께 신호대기를 하다 길을 건너던 비장애인과 충돌했다.

이 사고로 휠체어에 부딪힌 비장애인이 큰 부상을 입게 됐다. 부상을 당한 피해자 측에서는 처음에 약 1,000만 원의 합의금을 요청했고 이어서 형사고소와 3,000만 원의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이번 사건에 검찰은 올해 2월 모든 보행자는 횡단보도에서 안전한 거리를 두고 충돌을 미리 예방해 안전하게 보행할 주의의무가 있다고 하면서도 피고인이 107kg의 중량의 전동휠체어를 타고 가는 중이었으므로 다른 보행인의 안전에 더욱 주의했어야 함에도 그렇지 못한 과실이 있다고 보았고 벌금 500만 원의 약식명령을 내렸다.

약식명령이란 공판절차를 거치지 않고 원칙적으로 서면심리만으로 피고인에게 벌금형 등을 부과하는 간이한 형사절차다.

22일 수원지방법원 안양지원 앞에서 개최된 ‘휠체어 충돌 사건 형사처벌 500만 원 약식결정 정식재판 선고 기자회견’에서 발언하는 사단법인 온율 김영미 변호사. ⓒ장애인차별금지연대
22일 수원지방법원 안양지원 앞에서 개최된 ‘휠체어 충돌 사건 형사처벌 500만 원 약식결정 정식재판 선고 기자회견’에서 발언하는 사단법인 온율 김영미 변호사. ⓒ장애인차별금지연대

이러한 처분에 대해 장추련 등 시민사회단체는 “장애로 인해 움직임이 어렵기에 신체 일부로 보장구를 사용하는 것인데 보장구의 크기가 크고 무겁다는 이유로 형사처벌을 받게 되는 것은 옳지 않다”고 판단해 사단법인 온율 김영미 변호사 등 법률대리인단의 도움을 받아 정식재판을 청구했다.

김영미 변호사는 “이번 사건에 대한 검찰의 약식명령은 과실치상죄에서 처할 수 있는 법정 최고형이다. 하지만 A씨가 형사처벌을 받아 마땅한 과실이 있다고 볼 수 없었다”고 밝혔다.

‘도로교통법’ 제2조 10호에서는 휠체어 등 보행보조형의자체를 이용해 통행하는 사람을 보행자로 규정하고 17호에서는 보행보조형의자차를 차에서 제외하고 있다. 즉 A씨가 이용하는 전동휠체어는 도로교통법상 차마(車馬)가 아니며 전동휠체어를 이용해 통행한 피고인은 보행자에 해당한다.

김영미 변호사는 “도로교통법이 휠체어를 차마에서 제외한 이유는 휠체어 없이 독립보행이 힘든 장애인 등 이동약자의 보행권을 보장해주기 위함”이라며 “이러한 입법 취지를 고려할 때 일반 보행자와 휠체어 이용 장애인은 보행을 함에 있어 서로 상대가 정상적으로 보행하는 것을 방해하지 않을 정도로 동일한 정도의 주의의무가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며 휠체어 이용자에게 더욱 세심한 주의의무가 있다고 볼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재판부는 “피고인 A씨의 휠체어 보행과 일반 보행자와의 충돌건은 일반 보행자도 휠체어 이용자의 온전한 보행권을 방해하지 않을 수준의 주의의무가 있다”고 인정하며, “휠체어 이용 피고인에게만 그 과실을 부담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또한 CCTV 분석 결과, A씨가 일직 선상으로 직진해 보행했고 피해자가 경로를 이탈했다는 입장을 판시했다.

장애인차별금지연대는 22일 수원지방법원 안양지원 앞에서 ‘휠체어 충돌 사건 형사처벌 500만 원 약식결정 정식재판 선고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장애인차별금지연대
장애인차별금지연대는 22일 수원지방법원 안양지원 앞에서 ‘휠체어 충돌 사건 형사처벌 500만 원 약식결정 정식재판 선고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장애인차별금지연대

장추련 김성연 사무국장은 “해당 사건에 관해 정식재판을 청구한 것은 다친 사람을 모른 척하겠다는 뜻이 결코 아니었다. 다만 형사처벌로 인한 범죄자가 될 문제인지는 크게 고려해 봐야 한다는 것이 우리의 주장이었다”고 설명했다.

A씨는 피해자가 부상을 당한 상황이기에 민사소송 등의 진행 과정에서 합의가 필요한 부분이 있으리라 생각하며 어려운 경제 상황에서도 여러 가지 사항을 고려하고 있었다는 것.

이어 “휠체어 탑승 여부는 자전거처럼 장애인 당사자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휠체어를 탔다는 이유로 처벌하기 시작하고 범죄자가 될 위험이 있다면 휠체어 이용 장애인은 아무도 밖에 돌아다니지 못할 것”이라며 “오늘 재판의 결과는 재판부도 장애인의 이러한 상황을 충분히 고려한 상황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날 기자회견 현장에 참석한 피고인 A씨의 딸은 “긴 시간동안 많은 분이 많이 도움을 주셨고 그 도움으로 오늘 무죄 판결을 받게 돼 기쁘다. 이 판결을 토대로 해서 다른 장애인분들이 전동휠체어를 타고 보행함에 있어 저희 어머니와 같은 불이익을 받지 않았으면 하는 소망이다. 너무 감사하고 앞으로 장애인분들이 마음 편하게 휠체어를 탈 수 있도록 국가 차원에서도 많은 지원을 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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