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권리보장법'의 국회 본회의 통과는 장애인을 보호의 대상이 아닌 권리의 주체로 재정의한 역사적 진전이지만, 탈시설과 국가장애인위원회 설치 등 핵심 과제를 현실화하는 후속 입법과 제도 설계가 뒤따라야 할 것으로 보인다. Ⓒ Chatgpt 이미지 편집- 20여 년 제정 요구 끝에 국회 본회의 통과
- 장애인을 시혜의 대상 아닌 권리의 주체로 명시
- 탈시설 정의·국가장애인위원회 설치는 여전히 과제
- 시행까지 2년, 하위법령과 제도 설계가 성패 가를 듯
[더인디고=이용석 편집장]
장애인을 보호와 시혜의 대상이 아니라 동등한 시민이자 권리의 주체로 규정하는 「장애인권리보장법」이 23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장애계가 이 법의 제정을 요구해 온 지 20여 년, 20대 국회에서 관련 법안이 처음 발의된 지 10여 년 만에 이뤄낸 결실이다. 그동안 여러 차례 국회의 문턱 앞에서 멈춰 섰던 법안이 마침내 입법으로 이어졌다는 점에서, 이번 통과는 단순한 법률 제정을 넘어 우리 장애정책의 기준점을 바꾸는 사건으로 평가된다.
이번 법안 통과는 2024년 11월 4일, 47명의 의원과 함께 대표발의한 지 536일 만이다. 그 시간은 단순한 입법 절차의 시간이 아니라, 장애인이 사람답게 살게 해 달라는 너무도 당연한 요구를 정치와 제도가 얼마나 오랫동안 미뤄왔는지를 보여주는 시간이었다. 장애인의 권리를 별도의 시혜가 아닌 국가의 의무로 다시 써야 한다는 요구는 오래전부터 이어져 왔지만, 현실의 입법은 늘 늦었고 제도는 늘 뒤따라 왔다.
「장애인권리보장법」의 가장 큰 의미는 기존 장애인복지법 체계가 내포하고 있던 보호주의적·시혜적 관점을 넘어 장애인을 능동적 권리의 주체로 명확히 위치시켰다는 데 있다. 장애를 개인의 결함이나 돌봄의 대상으로만 바라보는 시선을 넘어,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자기결정과 참여, 존엄과 평등을 보장받아야 할 존재로 선언했다는 점에서 이 법은 장애인정책의 기본법적 성격을 갖는다.
또한 이 법은 장애등급제 폐지 이후의 제도 변화, 탈시설과 자립지원, 통합돌봄의 확대, 지역사회 기반 지원체계 전환 등 변화된 정책 환경에 대응할 수 있도록 장애인의 기본적이고 포괄적인 권리를 명시하고,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책무를 보다 분명히 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 그간 장애 관련 정책은 개별 사업과 서비스의 조각난 형태로 운영되며, 권리보장보다는 행정적 관리와 공급 논리에 머무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이번 법 제정은 그런 파편적 접근을 넘어 장애정책 전반을 권리 중심으로 재구성할 수 있는 법적 기반을 마련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나아가 이번 법 통과는 유엔장애인권리협약 비준국인 한국이 그에 상응하는 국내 법체계를 제대로 갖추기 시작했다는 점에서도 주목된다. 한국은 협약 비준 이후에도 여전히 제도와 현실 사이의 간극이 컸고, 국제기준에 비해 국가의 책임과 정책 이행 수단은 충분하지 않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그런 점에서 장애인의 권리를 포괄적으로 규정하고, 이를 국가 정책의 중심 기준으로 삼을 제도적 수단이 마련됐다는 점은 적지 않은 진전이다.
하지만 이번 법안이 온전히 만족스러운 결과만을 남긴 것은 아니다. 대표발의안에 담겼던 내용 가운데 탈시설의 정의와 대통령 직속 국가장애인위원회 설치 등이 심의 과정에서 조정된 점은 분명한 아쉬움으로 남는다. 특히 탈시설과 자립지원은 더 이상 선택적 정책이나 선언적 구호가 아니다. 이미 국제사회에서는 장애인이 시설이 아닌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권리를 기본권의 문제로 다루고 있으며, 이는 유엔장애인권리협약이 분명히 제시하고 있는 방향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한국 사회는 여전히 시설 중심의 사고와 행정체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인천 색동원 사건을 비롯해 반복돼 온 시설 내 학대와 성폭력, 그리고 피해자를 다시 다른 시설로 이동시키는 이른바 ‘시설뺑뺑이’ 현실은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시설을 유지한 채 선택을 말하는 것은 권리가 아니라 관리에 가깝다. 장애인의 지역사회 자립을 실질적으로 보장하지 못한 채 시설 중심 구조를 지속시키는 것은 결코 정의롭지 않다는것. 대통령 직속 국가장애인위원회 설치 문제 역시 마찬가지다. 장애정책은 복지, 고용, 교육, 교통, 주거, 보건, 문화, 사법 등 여러 부처와 영역에 걸쳐 작동한다. 그럼에도 현재의 전달체계는 부처별 분절성과 정책 조정의 한계로 인해 일관된 추진력을 확보하지 못해 왔다. 장애계가 오랫동안 국가장애인위원회를 요구해 온 이유도 여기에 있다. 단순한 상징기구가 아니라, 부처 간 조정과 정책 점검, 국가 책임의 실질화를 이끌 상설적이고 강력한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제 과제는 분명하다. 장애계는 법이 본회의를 통과했다고 해서 권리가 곧바로 현실이 되는 것은 아니라고 지적한다. 전면 시행까지 남은 2년 동안 장애 당사자와 현장의 목소리를 충분히 반영한 시행령과 시행규칙을 마련해야 하며, 필요한 경우 법률 개정도 주저해서는 안 된다. 선언적 권리 조항을 행정과 예산, 전달체계와 평가 구조 안에서 실제로 작동하게 만드는 일이야말로 지금부터의 핵심 과제라는 것이다. 따라서 이번 본회의 통과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고 주장한다. 장애인의 삶을 국가가 어떻게 이해하고, 어떤 책임을 질 것인가를 다시 묻는 출발선이 마련된 것인 만큼 「장애인권리보장법」은 장애인의 삶을 바꾸는 제도로 작동하게 만드는 일이라는 거다. 장애정책의 새로운 패러다임은 법의 제정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그 법을 끝까지 현실로 밀어붙일 때 비로소 시작된다고 봐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이다.
[더인디고 THEINDIGO]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