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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소설 속 장애인 등장, 비장애인우월주의의 희생양2025-03-27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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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 장애인 등장, 비장애인우월주의의 희생양

'인플루언스' 책 표지
소설 <인플루언스>는 장애를 가진 사람이 두 명 등장하지만, 소설에서 주인공에 비해 희생되는 느낌이 강하다. 장애학생은 통합학급보다 특수학교가 편하고, 비장애인의 외모가 묘사되어도 장애인은 그렇지 않다. ©박관찬 기자
  • 장애인은 특수학교로 가야 되고, 희생되는 캐릭터
  • 비장애인은 드레스코드, 몸매, 머리스타일 묘사하지만 장애인은 그렇지 않아

[더인디고=박관찬 기자] 곤도 후미에의 소설 <인플루언스>는 아동학대, 학교폭력 등 사회의 문제를 주인공 ‘토츠카 유리’의 1인칭 시점으로 섬세하게 담아냈다. 심지어 살인을 하는 장면조차도 살인의 경험이 없는 독자들에게 섬뜩함과 생동감을 동시에 느끼게 할 정도로 잘 묘사했다.

그리고 이 소설에서 또 한 가지 주목을 받은 부분은 장애를 가진 인물이 두 명 등장한다는 점이다. 이는 일본사회의 장애에 대한 인식을 보여주는 대목인지까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순수하게 장애인을 ‘등장’시킨 것에만 의미를 부여하기에는 뭔가 아쉽고 허전함이 드는 감정을 지우기 어렵다.

#장애인은 특수학교가 더 편하다?

이 소설에는 ‘아리사’와 ‘리나코’라는 두 장애인이 등장한다. 아리사는 언어장애가 있고 리나코는 다운증후군이다. 이들은 소설 속 주인공들과 같은 중학교를 다니는데, 특수학급이 아닌 통합학급이다.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에 함께 지내면서 서로를 챙겨주고 의지한다. 딱 이 부분까지만 좋았다.

하지만 리나코는 불량배 학생들에게 폭행을 당하며 죽게 된다. 이 충격으로 아리사는 한동안 학교에 나오지 않다가 결국 전학을 간다. 전학을 간 학교는 특수학교다. 애초에 통합학급이라는 환경을 설정해두었지만, ‘장애학생은 결국 특수학교에 가야 한다’는 뉘앙스를 지울 수 없다.

중학교에서 서로 의지하고 같이 어울린다고는 했지만, 소설을 잘 살펴보면 리나코를 많이 챙겨주고 의지하게 했던 이는 아리사였다. 즉 장애가 있는 학생을 챙겨준 학생도 장애를 가진 학생이다. 비장애인 주인공 유리가 같이 어울려 지내면서도 리나코에게는 내면에 미안한 감정을 가지고 있다는 부분에서 이를 알 수 있다.

고등학생이 된 주인공 유리가 오랜만에 아리사를 다시 만나는 장면도 아쉬움을 준다. 오랜만에 만난 아리사가 반가움에 ‘혀를 낼름거리며’ 장난스럽게 반가움을 표시하는 건 장애인의 있는 그대로를 잘 묘사했지만, 이어진 유리와의 대화에서 “지금 다니는 특수학교가 더 좋다”는 아리사의 말은 무겁게 다가온다.

특수학교가 필요하다는 건 인정하지만, 통합교육을 통해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교육받는 환경을 구축하는 노력도 꼭 필요하다.

#비장애인우월주의

개인적으로 소설을 읽는 내내 작가가 왜 장애를 가진 인물을 등장시켰는지, 그리고 왜 그 역할을 맡겼는지 궁금했다. 저자의 관점과 이 소설을 읽는 독자들의 관점에 따라 다를 수는 있지만, 기자는 ‘비장애인우월주의’가 한몫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이 소설의 전체적인 흐름을 이끌어 가는 인물은 유리와 ‘사토코’, ‘마호’ 세 명이다. 사토코와 마호는 예쁘고 키가 크다. 특히 마호는 발레를 해서 몸매도 좋다는 등 매력 넘치는 캐릭터로 등장한다.

반면 아리사와 리나코는 장애를 가진 학생으로 중학교 시절 잠시 등장(아리사는 고등학생이 된 뒤 유리와 잠깐 재회)하고, 심지어 리나코는 살해당한다. 소설의 주인공도 아니고 일부로 잠깐 등장할 뿐이다.

사토코와 마호는 머리 스타일이 어떤지, 무슨 옷을 입었는지 등 독자들의 상상을 유발할 수 있도록 잘 묘사한 반면, 리나코는 중학생 때 이후로는 ‘살해당했다’라는 내용으로만 등장한다.

만약이라는 가정은 뭣하지만, 유리나 사토코, 마호 세 명 중에 누군가가 장애를 가진 사람으로 등장했다면 어땠을까. 그럼 소설의 흐름을 이끌어가는 주인공 중 한 명이 장애를 가졌고, 소설 내내 장애를 가진 인물과 소통하고 함께하는 과정이 자연스럽게 드러난 것이다.

장애인이 특수학교에 가고, 장애인은 등장하더라도 잠깐 등장하며 심지어 희생되는 캐릭터다. 이는 우리 사회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부분을 다시 짚었기에 저자가 소설의 탄탄한 전개와는 별개로 아쉬움이 진하게 남는 게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