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인의 안전을 위해 디자인된 유도블록 위에 안내표지판을 세워 시각장애인의 보행에 위험을 줄 수 있다. ©박관찬 기자[더인디고=박관찬 기자] 시각장애가 있는 A 씨는 이른 아침 출근을 위해 부지런히 집을 나섰다. 지하철역에 도착해서 지하철을 타기 위해 흰지팡이를 이용해 유도블록으로 걸어가던 A 씨는 순간 멈칫했다. 평소라면 아직 지하철을 타는 곳인 에스컬레이터 타는 곳까지 도달하지 않았는데도 유도블록으로 진입할 수 없게 흰지팡이에 무언가 걸렸기 때문이다.
크게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A 씨는 유도블록 위에 있는 ‘무언가’를 피해 다시 유도블록으로 걸어갔다. 그렇게 몇 걸음이나 걸었을까. 얼마 지나지 않아 흰지팡이에 또 무언가가 걸리면서 A 씨의 진로를 방해했다. 끓어오르는 분노를 가라앉힌 A 씨는 가까이 다가가 유도블록 위에 있는 것을 만져 보았다.
뭔가 안내 표지판 같은 게 유도블록 위에 세워저 있다.
유도블록은 시각장애인이 흰지팡이를 이용해 안전하게 보행을 할 수 있도록 디자인된 것이다. 선을 따라가면 된다고 방향을 알려주는 ‘선블록’, 방향이 바뀌거나 멈춰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는 ‘점블록’으로 크게 두 가지 유형이 있다.
이렇게 시각장애인의 안전한 보행을 위해 만들어진 유도블록 위에는 ‘미끄럼 조심’이라고 적힌 구조물이 세워져 있었다. 그것도 구조물은 하나가 아니라 일정한 간격을 두고 두 개가 세워져 있다. 비가 오는 날씨로 인해 사람들이 접은 우산에서 떨어진 물기가 역내 바닥을 미끄럽게 한 것에 대한 미끄럼 주의를 알리는 정보로 보인다.
A 씨는 “시민들에게 역내 바닥이 미끄러우니까 조심하라고 알려주려는 취지는 충분히 이해하겠는데, 그걸 꼭 유도블록 ‘위에’ 둬야 하는지 의문”이라며 “시민들 중에는 분명 저같은 시각장애인도 있는데, 시각장애인의 안전은 생각하지도 않는 건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A 씨는 “지인 중에 시각장애인이 아닌데도 비나 눈이 오는 날에는 유도블록으로 다닌다고 하는 경우가 있는데, 유도블록 위로 걸어가면 미끄럽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하면서 “그런 의미로 보면 유도블록은 시각장애인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 편리함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유니버설 디자인이라고 생각하는 만큼 어떤 기능이 있는지 잘 인지해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A 씨의 사례를 접한 B 씨도 “장애인 편의시설이 존재해도 그게 어떤 기능이 있는지를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하며 “분명히 장애인 주차구역인데도 불구하고 거기에 택배 차량이 주차하거나 각종 짐이나 구조물 등을 두는 경우를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이어 B 씨는 “길이 미끄럽다고 사람들에게 주의해야 한다는 걸 알려주는 건 꼭 필요하지만, 분명 유도블록 위가 아니더라도 다른 곳에 안내표지판을 충분히 세울 수 있을 것”이라며 “또 거기에 안내 표지판을 세웠다가 시각장애인이 부딪혀 넘어지거나 하는 사고가 발생한 뒤에 부랴부랴 치우지 말고, 사전에 사고를 방지하고 유도블록의 기능을 잘 인지했으면 한다”는 바람을 전했다.
[더인디고 박관찬 기자 p306kc@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