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20년 만에 피츠버그의 옛집을 다시 찾은 김종배 교수. OVR 지원을 통해 차고 앞 주차공간을 넓히고, 휠체어로 뒤뜰을 거쳐 집 안까지 이동할 수 있는 접근 동선을 마련했다. 사진=김종배 교수 제공피츠버그에서의 마지막 일정을 마치고 시간이 조금 남아 숙소인 베이커리스퀘어에서 예전에 살던 집과 거리로 산책을 나갔다.
미국에 처음 왔을 때는 지인의 도움으로 학교 가까운 타운하우스에 살았다. 하지만 딸아이가 학교 다니기에 불편해 샤디사이드의 켄모어 아파트로 옮겼다.
피츠버그의 아파트는 우리나라처럼 여러 동이 모인 단지형이 아니라 대개 하나의 건물로 되어 있다. 건물 전체를 개인이나 법인이 소유하고 세대를 월세나 장기 임대로 운영하는 방식이다. 한국처럼 세대별 개인 소유 형태는 콘도(Condo)에 가깝다.
켄모어 아파트는 당시 비교적 고급 아파트였지만, 미국까지 와서 또 아파트에 살기보다는 대부분의 미국 가정처럼 단독주택에서 살아보고 싶었다.
샤디사이드와 스쿼럴힐은 오래된 저택과 나무가 많아 산책하기 좋았다. 아내와 나는 산책하면서 우리가 살 만한 집을 찾는 것이 작은 즐거움이었다.
한 번은 샤디사이드의 고급 주택가에서 규모가 작고 단정한 단층집을 발견했다. 대부분의 집은 2~3층이고 계단이 많아 휠체어를 탄 내가 살기 어려웠지만, 그 집만은 달랐다. 너무 마음에 들어 우편함에 “휠체어를 타는데 혹시 집을 파실 의향이 없느냐”는 편지를 넣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주인이 얼마나 황당했을까 싶다.
그러다 스쿼럴힐 쪽까지 범위를 넓혔다. 멜론파크를 끼고 비치우드블러바드(Beechwood Boulevard)를 따라가면 크고 오래된 주택들이 이어진다. 다람쥐와 솜꼬리토끼를 만나고, 지나가는 사람들과 ‘하이’ 인사를 나누며 집 구경 겸 산책을 즐겼다.
마침내 교민 공인중개사에게 부탁해 찾던 집이 나왔다.
“할렐루야!”
Dalzell Place Pittsburgh. 마당에 ‘For Sale’ 푯말이 꽂힌 1층짜리 랜치스타일 주택이었다. 주택 아래 옛 석탄 갱도가 있는지, 방사성 물질 문제는 없는지 등 수많은 서류에 사인한 뒤 한국의 아파트를 팔고 미국에 집을 샀다.
이번 출장에서 그 집을 거의 20년 만에 다시 찾았다. 아내가 심어놓은 체리나무는 제법 자라 있었고, 거실 창과 현관, 차고 앞 내가 차를 세우던 자리도 그대로였다. 딸과 친하게 지냈던 ‘마야’도 만나 인사를 나눴다. 어린아이였던 마야는 이제 결혼해 남편을 소개했다. 옛집 앞에 서 있으니 지난 시간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코코와 시나몬이 뛰놀던 동네
피츠버그에서 생활하던 시절 김종배 교수와 반려견 코코·시나몬. 두 반려견과 함께한 산책은 김 교수 가족의 일상이자 스쿼럴힐 생활의 소중한 추억으로 남아 있다. 사진=김종배 교수 제공집을 산 뒤 딸이 그렇게 원하던 강아지도 입양했다. 학교 동료의 이웃집에서 태어난 푸들과 시추 혼혈 ‘코코’였다.
그런데 낮에는 모두 집을 비우니 코코가 외롭다며 딸이 한 마리를 더 데려오자고 졸랐다. 결국 오하이오주 콜럼버스까지 가서 토이푸들을 데려왔다. 까만 아이는 코코, 갈색 아이는 시나몬이라 이름 붙였다.
두 아이는 17세까지 살다 재작년과 작년에 차례로 세상을 떠났다. 아내는 아직도 그 아이들을 많이 그리워한다.
미국에서는 강아지를 하루 두 번은 산책시켜야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아내는 매일 스쿼럴힐에서 멜론파크까지 코코와 시나몬을 데리고 다녔다. 가끔 공동묘지 잔디밭에 풀어놓으면 둘이 온 힘을 다해 달렸다. 못 걷는 내가 대신 달리는 것처럼 속이 시원했다.
딸도 학교가 끝나면 동네 아이들과 이 집 저 집을 오가며 땅거미가 질 때까지 놀았다. 미국에서 초·중·고 10년을 다니면서 학원 한번 다니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일상이 저절로 가능했던 것은 아니었다.
집에 들어갈 수 있어야 일도 할 수 있다
김종배 교수가 박사과정에서 연구한 원격접근성평가시스템의 시뮬레이션 화면. 주택을 3D 모델로 구현한 뒤 실제 사용자의 휠체어 크기를 적용해 이동 가능 여부와 개조가 필요한 공간을 분석했다. 사진=김종배 교수 제공집은 단층이었지만 전동휠체어를 탄 나에게는 여전히 불편한 점이 많았다.
정문에는 계단이 다섯 개 있었고, 뒤뜰 데크에도 계단이 있었다. 안방 화장실은 좁아 전동휠체어가 겨우 들어갔고, 샤워부스에는 턱이 있었다. 지하 패밀리룸에 한국에서 가져온 책장과 책을 넣어두었지만 나는 그 공간에 내려갈 수 없었다.
OVR 지원으로 설치한 가정용 엘리베이터를 이용해 1층에서 이동하는 모습. 엘리베이터는 거실과 차고, 지하층을 연결해 김 교수가 혼자서도 출퇴근과 일상생활을 할 수 있도록 했다. 사진=김종배 교수 제공마침 내가 박사과정에서 개발하고 실증하던 것이 ‘원격접근성평가시스템’이었다.
척수손상 등으로 휠체어를 사용하게 된 사람이 재활치료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려 해도, 집에 들어가지 못하거나 생활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이때 건축사와 작업치료사 등이 집을 직접 방문해 장애 상태에 맞게 어디를 어떻게 고칠지 평가하고 처방해야 한다.
나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D 사진으로 집의 3D 모델을 만드는 포토그래메트리(Photogrammetry) 기술을 활용했다. 멀리 있는 집을 디지털카메라로 촬영해 보내면 3D 모델을 만들고, 환자와 건축사, 작업치료사가 컴퓨터 화면을 보면서 집 안의 치수를 확인하고 개조 방안을 정하는 방식이었다.
이 프로젝트를 함께하던 동료 밥 린치는 건축사였다. 내가 새로 산 집의 문제를 이야기하자 밥은 바로 OVR에 내 사례를 보고했다. 그리고 OVR은 집을 고치기 시작했다.
차에서 집 안까지, OVR이 바꾼 여섯 가지
OVR은 휠체어 사용 근로자인 내가 운전할 수 있도록 차량만 개조해주는 데서 끝나지 않았다. 출퇴근하고, 집에서 쉬고, 다시 일할 준비를 할 수 있도록 주거환경까지 지원했다.
건축사와 작업치료사가 직접 집을 평가한 뒤 여섯 가지 공사가 진행됐다.
차고 앞 주차 공간을 넓혀 저상 미니밴의 경사로를 펼칠 수 있도록 했고, 식당이 있는 1층과 차고, 지하실을 연결하는 가정용 엘리베이터를 설치했다. 차고 옆 뒤뜰 길도 넓혀 시멘트로 포장했다.
뒤뜰 데크에는 완만한 경사로를 만들고 집 뒷문에는 자동문을 달았다. 안방 화장실은 세면대를 옮기고 샤워부스 턱을 없애 휠체어가 그대로 들어갈 수 있게 바꿨다. 바닥을 낮추면서 약해진 샤워실 하부 구조도 지하에서 보강했다.
가정용 엘리베이터를 타고 차고로 내려온 김종배 교수가 직접 운전해 출근하기 위해 차량으로 이동하고 있다. OVR의 지원은 주거 개조와 차량 이용을 연결해 독립적인 출퇴근을 가능하게 했다. 사진=김종배 교수 제공그 결과 나는 혼자 엘리베이터를 타고 차고로 내려가 차를 타고 출근할 수 있었다. 집에 아무도 없어도 혼자 운전해 돌아와 다시 집 안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샤워를 하고, 지하 패밀리룸을 서재로 꾸며 책을 읽고 일을 했다. 여름이면 뒤뜰에 나가 바비큐를 즐겼고, 정전이 되거나 엘리베이터가 멈춰도 뒤뜰 경사로를 통해 스스로 드나들 수 있었다.
그전까지 집은 내가 도움을 받아야만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이었다. 하지만 OVR의 지원 이후 집은 비로소 내가 혼자 살아갈 수 있는 공간이 됐다.
OVR이 고쳐준 것은 집 몇 군데가 아니었다. 교수로, 연구자로, 한 가족의 가장으로 내가 가진 능력을 계속 이어갈 수 있도록 삶의 조건 자체를 바꿔준 것이다.
그 덕분에 우리 가족도 좋은 이웃들과 어울려 평범한 일상을 누렸다. 딸은 우리가 어릴 때 그랬던 것처럼 친구들과 이 집 저 집을 오가고, 집 앞 골목과 공동묘지 잔디밭을 뛰어다니며 땅거미가 질 때까지 놀았다.
돌이켜보면 OVR은 우리 가족에게는 평범한 일상을, 나에게는 혼자 움직이고 일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업무 경쟁력을 돌려주었다.
장애인의 ‘일할 권리’를 어디까지 지원할 것인가
김종배 교수가 피츠버그에서 생활하던 시절 아내와 반려견 코코·시나몬을 데리고 자주 찾았던 이탈리안 레스토랑 ‘Pino’s’를 약 15년 만에 다시 찾았다. 옛 단골을 기억한 주인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며 당시의 추억을 되새겼다. 사진=김종배 교수 제공옛집을 둘러본 뒤 내려오는 길에 거의 15년 만에 이탈리안 레스토랑 ‘피노스’에 들렀다. 예전에 아내와 강아지 둘을 데리고 산책하다 자주 피자를 먹던 곳이다.
주인은 나를 기억하고 있었다. 아내와 강아지 둘을 데리고 자주 오던 동양인 전동휠체어 손님을 잊기 어려웠을 것이다. 오랜만에 인사를 나누며 옛날처럼 피자를 맛있게 먹었다.
우리나라 장애인고용공단도 많은 노력을 하고 있고 잘하는 부분이 많다. 하지만 미국 OVR처럼 장애인 근로자가 근로자로서 존엄과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도록 지원의 범위를 조금 더 세심하게 넓힐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기업 역시 장애인이 실제로 취업해 일할 수 있도록 물리적 환경과 조직의 인식, 문화를 바꾸는 노력이 필요하다. 장애인 고용을 부담금이나 후원금으로 대신하려는 방식은 장애인에게 일할 기회를 주기보다 ‘돈으로 해결하면 된다’는 잘못된 인식을 키울 수 있다.
집까지 완벽하게 고쳐준 OVR을 떠올리며 생각했다. 장애인을 지원한다는 것은 무엇을 대신해주는 일이 아니라, 그 사람이 가진 능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도록 환경을 바꿔주는 일이어야 한다.
이제 내일은 마지막 출장지, 뉴욕으로 떠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