휠체어 못 가는 정원 출입구 및 통로의 계단과 턱 그리고 요철노면 지난 5월 22일부터 서울의 신대방동 보라매공원에서 「2025 서울국제정원박람회」가 열리고 있다. 이 박람회는 오는 10월 20일까지 장장 152일간의 일정으로 열린다.
행사 포털에는 서울특별시와 서울국제정원박람회 조직위원회가 주최하고 ‘○○○○’이라는 회사와 ‘○○일보’가 주관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서울에서 서울특별시 주최로 매년 열리는 국제정원박람회는 이번이 10번째라고 한다. 그동안 월드컵공원, 여의도공원, 하늘공원(2023), 뚝섬한강공원(2024) 등 여러 곳에서 번갈아 가며 열렸다.
서울시청의 주무 부서는 정원도시국의 정원도시정책과와 조경과 소관이다. 오세훈 서울시장의 개막연설과 함께 막을 올린 지 열흘 만에 110만 명이 다녀갔다고 한다. 이런 추세라면 전체 행사기간에는 1,500만 명 이상이라는 엄청난 사람이 왔다 갈 것이다.
오시장은 개막식에서 “정원박람회는 앞으로 계속돼 서울을 정원도시로 만들 것”이라며 “시민 생활 속에 늘 정원과 꽃, 풀, 나무가 함께하도록 만들겠다”고 말했다.
정원박람회는 서울에서만 열리는 것은 아니다. 경기도 등 다른 시·도에서도 시기는 다르지만 해당 지자체별로 열리는 곳이 많다. 그러나 관람객으로 따진다면 서울의 박람회는 다른 시·도를 모두 합한 것보다 많을 것 같다.
이번 서울박람회는 작가정원, 기관정원, 기업정원, 시민정원, 지자체정원 등 12개 분야에 총 111개의 정원 작품이 참가하였다. 생명, 생태, 순환, 지속가능성, 공존’ 등을 주제로 조성한 33개 작품정원은 각 참여 주체별 정체성이 녹아 있다.
특히 서울시청 조경과는 박람회 개막과 관련하여 배포한 보도자료에서 이번 박람회는 “동선에 장애물 없는 ‘정원동행투어’ 등 유아부터 어르신까지, 모두에게 열린 박람회”라고 강조했다. 그리고 올해 처음 시작되는 ‘정원동행투어’는 계단 등 장애물이 없는 단순한 동선에 어르신, 장애인 등에게 맞춤형으로 제공된다고 밝혔다.
과연 그럴까? 필자가 최근에 직접 전동휠체어를 타고 현장을 둘러봤다.
휠체어나 유아차 등이 못가는 각종 행사장과 정원
휠체어, 유아차 등의 통행이 어려운 통로와 노면전시된 정원작품들은 대부분 정원을 앞에서 바라보고 조망하는 것은 물론, 사람들이 정원 안으로 들어가서 사진도 마음대로 찍을 수 있도록 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정원마다 아름답고 아담하게 꾸민 휴게공간에서 잠시나마 쉬면서 힐링도 가능한 구성이었다.
그러나 대부분은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 등 이동약자에게는 ‘그림의 떡’이나 마찬가지였다. 서울시의 홍보와는 달리 장애물 없는 동선을 찾기는 너무 힘들었다.
대부분의 입구는 휠체어가 들어갈 수 없는 턱이나 계단으로 꾸며져 있었다. 통로의 노면 또한 대부분 자연석 소재의 판석, 자갈 등이 깔려 있거나 징검다리식 구성으로 심한 요철이 발생하여 휠체어 통행은 거의 불가능했다.
장애인 등 누구나 개별 정원에 들어가서 근접 감상을 하거나 휴게 체험이 가능하도록 접근로의 경사로 등 유니버셜 디자인이 반영된 정원은 불과 10%도 안 돼 보였다.
동선에 장애물이 없이 유아부터 어르신까지, 모두에게 열린 박람회라고 강조하지만 이는 허울뿐이다. 좀 다르게 말하면 장애인 등 이동약자를 우롱하는 일이다.
그리고 현장에 전동휠체어를 비치하면서 이동약자들에게 빌려주는 것으로도 생색을 내고 있지만 전동휠체어를 이용할 만큼의 중증장애인이라면 현장까지 반드시 휠체어를 타고 올 것이기 때문에 전동휠체어 대여는 의미가 없다. 평소에 전동휠체어를 이용하지 않는 사람에게 전동휠체어를 함부로 대여하는 것은 오히려 조작미숙 등으로 굉장한 위험요소가 될 뿐이다.
이동약자의 통행이 어려운 정원박람회 출품 정원
이동약자의 통행이 어려운 턱, 턱, 턱
이동약자의 통행을 어렵게 하는 각종 단차정원박람회에 전시되거나 입상한 정원 작품들은 방문객들의 감상 외에도 여러 가지 상징적 의미를 갖는다. 공원이나 공공건축물은 물론 관광지 등 공공시설에서부터 대형 음식점 등 민간의 상업공간에 이르기까지 다중의 사람들이 이용하게 될 공중시설을 설계하고 조경을 꾸미는데 중요한 모델이 되기 때문이다.
전국에서 늘어나고 있는 테마파크 등 지자체가 많은 예산을 들여 설치하는 공공시설의 경우 꼭 개장한 뒤에 장애인 불편시설의 문제가 드러난다. 설계나 시공단계에서 반영되지 못한 이동약자 편의시설을 완공 후에 보완하려면 별도의 비용이 들어갈 뿐 아니라, 구조상 개선이 불가능한 경우도 많다.
그런데도 유니버셜 디자인을 전혀 반영하지 않고, 오히려 장애인 차별시설이 될만한 작품들까지 개념없이 전시하고 시상까지 하는 것은 아니함만 못하다.
우리나라는 초고령사회에 들어섰고, 출산율은 최악이다. 장애인은 물론 초고령 노인도 활동하기 좋고 아기 키우기도 좋은 환경을 크게 확대할 필요가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모든 사회시설에 유니버셜 디자인 정책이 반영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서울시가 정원박람회 전시작품을 공모할 때부터 모든 작품에 유니버셜 디자인을 반영하도록 하고 심사기준에도 유니버셜 디자인 요소를 반드시 평가항목에 넣어야 한다. 이번에도 정원연출 참가규정이나 심사기준에는 그런 요소들이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서울시는 「유니버설디자인 도시조성 기본 조례」를 시행하고 있다. 이 조례의 제2조에는 "‘유니버설디자인’이란 성별, 연령, 국적 또는 장애의 유무 등과 관계없이 모든 시민이 안전하고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환경을 계획하는 것을 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모든 공공시설에 있어서 장애인도 장애가 없는 사람과 똑같은 수준의 접근성과 이용편의를 보장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제7조의 적용범위에는 공원시설이 포함되어 있다. 현재 보라매공원에 설치된 박람회 전시 작품도 분명히 공원시설의 일부다. 그렇다면 당연히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차별없이 이용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추어야 한다. 그럼에도 서울시는 ”국제“라는 명칭을 넣어가며 국제적 수준의 박람회를 개최하면서 유니버셜 디자인을 반영하지 않은 것은 매우 유감이다.
이런 결과를 초래한 것은 관련 조례를 담당하는 시청 디자인정책관은 물론, 소속 공무원들의 책임도 작지 않다.
앞으로라도 새롭게 개최하는 정원박람회는 반드시 유니버셜 디자인 정책이 제대로 반영될 수 있도록 정원도시국은 물론 디자인정책관실에서도 책임과 의무를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유니버셜 디자인이 아쉬운 보라매공원 각종 시설과 정원 작품
무장애 공간으로 꾸며진 보기드문 정원작품
휠체어 이용자 등 이동약자를 고려한 몇 안되는 무장애 공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