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에서 A중학교에 재학 중인 민수(가명)는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 학생이다. 영어를 무척 좋아한다. 유창한 발음과 논리적인 전개로 학교에서도 소문난 실력자다. 그런 민수에게 학교에서 매년 열리는 '교내 영어연설 경연대회'는 자신의 꿈에 한 발짝 더 다가갈 소중한 기회였다. 하지만 민수는 결국 참가를 포기했다. 실력이 부족해서가 아니었다. 휠체어를 타는 민수가 연설을 위해 올라가야 할 대강당 무대에는 단 세 칸의 계단뿐이었기 때문이다.

B고등학교에 다니는 명희(가명)도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이다. 그는 교내 글짓기 대회에서 최우수상을 받게 되었다. 학교 체육관에서 시상식이 열렸다. 이 학교 체육관도 무대시설이 있지만 장애인 접근을 위한 편의시설이 없다. 우수상을 받는 수상자들은 레드카펫이 깔린 단상에서 수상을 하는데 비해 정작 최우수상을 받는 명희는 단상에 올라갈 수 없어 바닥에서 상을 받아야 했다. 장애인에 대한 배려라고 하지만 오히려 차별을 당한 느낌이 더 강했다. 의도적인 차별은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 차별이 되고 말았다.

민수와 명희가 겪은 상황은 단순히 개인의 안타까운 사연을 넘어, 장애인의 정당한 권리가 침해된 사례라 할 수 있다.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장애인등편의법) 시행령」에 따르면, 국가나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이 운영하는 공연장이나 강당 등의 무대에 높이 차이가 있을 경우, 장애인 등이 안전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경사로 또는 휠체어리프트 등을 설치하도록 하고 있다.

2026년인 현재, 법이 개정된 지도 벌써 수년이 흘렀다. 하지만 우리 아이들이 매일 이용하는 일부 학교 현장에서는 아직도 '무대시설 접근권'이라는 기본적인 권리조차 지켜지지 않고 있는 곳이 많다. 민수가 영어 원고를 쓰며 밤을 지새우는 동안, 정작 학교는 민수가 그 원고를 낭독할 '길'을 만드는 데 소홀했던 것이다. 휠체어 접근을 위한 편의시설이 없는 무대는 장애 학생에게 "이곳은 너의 자리가 아니다"라는 보이지 않는 거절의 메시지를 보내는 것과 같다. 이는 결과적으로 장애인에 대한 차별로 이어질 수 있다.

장애인등편의법 제4조에는 “장애인등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보장받기 위하여 장애인등이 아닌 사람들이 이용하는 시설과 설비를 동등하게 이용하고, 정보에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한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 제4조에 의하면 “장애인에게 정당한 편의 제공을 거부하는 경우”에도 장애인 차별행위에 해당하며, '정당한 편의'란 “장애인이 장애가 없는 사람과 동등한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편의시설 설치 등 제반 조치를 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장애 학생이 비장애 학생과 똑같이 무대 위에 서서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 그것이 교육의 시작이자 국가와 공공기관의 법적 의무다. 민수가 더 이상 무대 아래에서 친구들의 박수 소리만 듣지 않도록, 학교 대강당의 장벽을 허무는 실질적인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경기도의회 이애형 교육행정위원장(국민의힘) 주관으로 지난해 실시했던 경기도 내 학교시설에 대한 장애인편의시설 설치 현황 조사 결과에 따르면 현재 경기도교육청 관내 264개 학교가 아직도 미설치 되었다는 것이다. 총 2,300여 학교 중 11%가 넘는 비율이다.

그리고 이애형 위원장의 현장실태 확인 결과에 의하면 일부 학교의 경우 경사로가 설치되어 있지만 휠체어 이탈 방지턱이 너무 낮거나 안전바가 제대로 설치되어 있지 않아 위험 요소가 있는 곳도 다수 발견되었다고 한다. 휠체어 리프트의 경우에도 관리 부실과 사용법 미숙 등으로 이용이 곤란한 경우도 있었다.

장애인 관련 기관이나 단체에서는 이러한 미설치 또는 부실관리 등으로 나타나는 현상이 학교시설뿐만 아니라 다른 관공서의 청사 또는 공공 문화시설 등에서도 예외는 아닐 것이라고 보고 있다.

전문가들은 장애인 접근권 보장을 위해서는 휠체어 리프트 등을 설치함에 있어서도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동일 시설을 차별없이 자유롭게 이용하게 하는 환경을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경기도지체장애인협회의 김원종 협회장도 협회 소속 ‘장애인편의시설 설치 도민촉진단’ 주관으로 학교와 관공서 등 각 공공시설에 대한 지속적인 모니터링과 계도 활동을 이어가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