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틀랜타공항에서 지상 직원들이 김종배 교수의 전동휠체어를 항공기 화물칸에 싣기 위해 컨베이어벨트 차량으로 옮기고 있다. 다기능 시트가 장착된 전동휠체어는 무게와 크기, 배터리 정보까지 확인해야 해 항공 이동 과정에서 세심한 지원이 필요하다. 사진=김종배 교수 제공
애틀랜타공항에서 지상 직원들이 김종배 교수의 전동휠체어를 항공기 화물칸에 싣기 위해 컨베이어벨트 차량으로 옮기고 있다. 다기능 시트가 장착된 전동휠체어는 무게와 크기, 배터리 정보까지 확인해야 해 항공 이동 과정에서 세심한 지원이 필요하다. 사진=김종배 교수 제공

전동휠체어와 함께 비행기를 탄다는 것

미국에서의 네 번째 날, 이제 이번 출장의 두 번째 목적지이자 많은 업무가 기다리고 있는 피츠버그로 향한다. 일찌감치 일어나 공항으로 갔다.

애틀랜타공항은 여행객들로 말 그대로 북새통이었다. 국내선 체크인에도 사람이 많았다. 델타항공 체크인 부스로 가서 여행 가방을 부치고, 전동휠체어는 게이트에서 부치겠다고 했다. 나도 공항 안에서 식사도 하고 이동도 해야 했기 때문이다.

전동휠체어를 항공기 화물칸으로 보내는 절차는 생각보다 까다롭다. 휠체어에 대한 정보를 자세히 제공해야 하고, 다루는 방법도 설명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배터리다. 전동휠체어에는 배터리가 들어가는데, 항공기 운송에서는 위험물로 분류될 수 있기 때문에 정확한 정보 제공이 필요하다.

항공기 탑승을 위해 작성한 전동휠체어 취급 안내서. 휠체어의 무게와 크기, 배터리 종류, 수동 전환 방법 등을 사전에 제공해야 공항 지상 직원들이 장비를 안전하게 다룰 수 있다. 사진=김종배 교수 제공
전동휠체어 취급 안내서를 휠체어 뒤에 부착한 모습. 이 안내서에는 휠체어의 무게와 크기, 배터리 종류, 수동 전환 방법 등을 사전에 제공해야 공항 지상 직원들이 장비를 안전하게 다룰 수 있는 내용들을 표기해 놓았다. 사진=김종배 교수 제공

전동휠체어에는 납산 배터리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전해질로 쓰이는 황산이 새면 항공기 구조물 부식이나 전기배선, 다른 화물 손상 위험이 있기 때문에 분리 보관이 원칙이다. 요즘은 액체 배터리보다 젤 타입 배터리를 많이 사용하지만, 반드시 젤 타입인지 액체 타입인지 분명히 알려줘야 한다. 최근에는 몇 와트인지도 묻기 때문에 구매처를 통해 정확한 정보를 미리 준비해두는 것이 좋다.

나처럼 사지마비 장애인의 자세 변환을 위해 다기능 시트를 장착한 전동휠체어는 시트 변환용 모터가 4개나 더 들어간다. 휠체어 무게만 90kg이고, 머리받침대를 제외해도 높이가 110cm나 된다. 이 같은 제원도 구매처나 홈페이지를 통해 미리 확인해두어야 한다.

또 휠체어를 비행기 출입구에서 받아 화물칸에 적재할 지상 직원들에게 수동·전동 전환 방법과 배터리 전원 차단 방법을 설명해줄 필요가 있다. 도착지에서는 또 다른 공항 직원이 휠체어를 다뤄야 하므로, 휠체어 제원과 사용법을 그림과 함께 한국어와 영어로 정리해 휠체어에 달아두면 좋다.

보안검색대에서 게이트까지

체크인이 끝나면 보안검색대를 통과한다. 9·11 테러 이후 생겨난 강화된 보안 절차다. 끔찍한 비행기 납치 테러가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를 공포와 충격 속으로 몰아넣었던 만큼, 이제는 이 불편함이 당연한 절차가 되었다.

그런데 애틀랜타공항 보안검색대를 통과하던 중 한쪽 X-ray 검색기에 문제가 생겼다. 곧 양쪽 컨베이어벨트가 모두 멈췄다. 10분 이상 기다린 뒤 겨우 조금씩 움직이나 싶더니 다시 양쪽 검색대가 모두 멈췄다. 20분쯤 지났을까. 그제야 라인이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전동휠체어 사용자인 나는 CT 검색대를 통과할 수 없다. 검색 직원이 고무장갑을 끼고 내 몸과 휠체어를 직접 수색한다. 배와 겨드랑이, 등과 다리까지 손으로 확인한다. 또 지름 5cm 정도의 둥근 샘플링 페이퍼로 휠체어나 신체 일부를 두드리거나 문지른 뒤, 폭발물 흔적 탐지기에 넣어 검사한다.

오랜 기다림 끝에 검색대를 통과해 피츠버그행 게이트로 갔다. 휠체어 사용자는 가장 먼저 비행기에 탑승하기 때문에 공지된 탑승 시간보다 15분 정도 일찍 게이트에 와서 휠체어에 수하물 태그를 붙여야 한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근처 중국 음식 체인점에서 간단히 식사를 하고, 다시 게이트로 돌아왔다.

탑승 시간이 되자 PRM 요원들과 함께 브리지를 지나 비행기 탑승구 앞에 도착했다. 이제 요원들이 나를 아일체어에 옮겨 태워 좌석까지 이동시킨다. 전동휠체어는 화물 담당 직원들이 그라운드에서 올라와 받아간다.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듯

김종배 교수가 피츠버그공항에서 28X 공항버스에 탑승해 시내로 이동하고 있다. 공항 이후의 대중교통 접근성은 휠체어 이용 여행자에게 중요한 이동 조건이다. 사진=김종배 교수 제공

국내선 비행기는 국제선보다 작은 경우가 많다. 이번 비행기는 캐나다 봄바르디어 회사 제품으로, 한 줄에 좌우 2개씩 모두 4개의 좌석이 있었다. 나는 당연히 옮겨 앉히기 쉬운 복도 쪽에 앉았고, 창가에는 이 선생이 앉았다.

우리는 창밖으로 비행기 아래 그라운드에서 짐을 싣는 장면을 지켜보았다. 비가 조금씩 내려 창에는 빗방울이 맺혀 있었다. 컨베이어벨트 차량이 화물칸 입구에 붙었다. 내 휠체어가 도착하자 화물 직원들이 이리저리 살펴보는 사이, 승객들의 여행 가방을 실은 트레일러도 도착했다.

비행기가 작다 보니 화물칸 입구도 작았다. 90kg이나 되는 전동휠체어를 화물칸에 넣는 일은 쉽지 않았다. 컨베이어벨트 상단을 화물칸 입구 높이에 맞추고, 휠체어를 벨트 위에 올린 뒤, 컨베이어를 작동시켜 입구까지 올렸다. 화물칸 입구가 작아 머리받침대를 제거하고 등판을 뒤로 젖혀 높이를 낮춘 뒤에야 휠체어를 밀어 넣고 고정할 수 있었다.

이 정도면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는 수준이다.

“굿 잡!”

여차하면 내려가서 도와줄 준비를 하고 있던 이 선생은 안도의 숨을 내쉬며 엄지를 치켜올렸다. 예전에도 공항 직원들이 휠체어를 제대로 다루지 못해 이 선생이 직접 그라운드로 내려가 설명해준 적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긴장하며 그 장면을 지켜보았다.

첫 번째 글에서도 말했듯이, 한국은 인천공항을 포함한 모든 공항에 공항 차원의 PRM 서비스가 없다. 국제선도 그 수준인데, 국내선이나 가까운 아시아 국가를 주로 운항하는 저가항공사는 어떨까.

작년 나고야대학교를 다녀오며 겪은 악몽이 떠오른다. 나고야 직항은 저가항공밖에 없어 아무 생각 없이 처음으로 저가항공을 이용했다. 나고야에서 출발할 때는 남자 직원이 탑승을 도와주었다. 그런데 인천공항에 도착하니 이동지원 직원이 오지 않았고, 타이트한 승무원복을 입은 여성 승무원들이 마치 가방을 들듯 나를 들어 아일체어로 옮기려 했다. 결국 기장이 와서 이 선생과 함께 나를 들어 아일체어에 앉히고 밖까지 밀어주었다.

전동휠체어는 수하물 찾는 곳에서 찾아야 한다고 했다. 지상 직원이 한 명 올 것이라며, 막차를 타야 한다는 승무원들은 나를 불안한 아일체어에 앉혀둔 채 먼저 가려 했다.

“승객이 아직 본인 휠체어도 못 찾았는데 다들 가버린다고? 나도 막차 타야 해!”

한참을 기다린 뒤에야 수하물 담당 남자 직원이 수동휠체어를 끌고 왔다. 승무원들은 이미 모두 가버렸다. 나는 수하물 집하장에서 내 휠체어로 옮겨 앉고, 여행 가방을 찾아 휠체어에 메고, 서울역행 공항철도를 탔다. 결국 원주행 KTX 막차를 놓쳐 양평까지 전철로 간 뒤, 야간 운행 장애인콜택시를 타고 원주 집에 도착하니 새벽 3시였다.

항공기도 대중교통이다

휠체어 이용 승객이 자신의 휠체어를 탄 채 항공기 기내에 탑승하고, 휠체어가 항공기 좌석 공간에 안전하게 고정되는 방안을 보여주는 ‘접근 가능한 팔레트(Accessible Pallet)’ 개념 설계 이미지. 버스나 기차처럼 항공기에서도 휠체어를 탄 채 이동할 수 있도록 하는 미래 항공 접근성 연구의 한 사례다. 자료=RERC on Move It 홈페이지

피츠버그행 비행기는 하늘로 고도를 높이는가 싶더니, 잠깐 간식을 먹는 사이 다시 고도를 낮추기 시작했다. 앞 좌석 LCD 화면에 익숙한 도시 이름들이 지나갔다. 애틀랜타에서 피츠버그까지는 2시간도 걸리지 않는다. 올라가는가 싶더니 이내 내려가는 비행이었다.

25년 전 처음 미국에 왔을 때만 해도 피츠버그공항 같은 작은 공항에는 전동휠체어 사용자가 많지 않아 공항 직원들의 PRM 서비스가 서툴렀다. 여직원 두 명이 나를 옮기느라 힘들어했던 적도 있었고, 휠체어를 화물칸에서 내리다가 마지막에 놓쳐 앞바퀴 축이 휘어진 적도 있었다. 내가 아는 한 휠체어 사용 친구는 자기 휠체어가 뉴욕행 비행기에 실려 가는 바람에 공항 호텔에서 하룻밤을 묵어야 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했다.

미국장애인법(ADA)과 항공운송접근법(ACAA)에 따라 비행기는 대중교통으로서 장애인 차별이 엄격히 금지되어 있다. 그러나 여전히 휠체어를 탄 채 비행기에 탑승하는 것까지는 보장하지 못한다. 기술적·제도적 한계 속에서 휠체어 여행자들은 여전히 불편과 위험을 감수한다.

다행히 변화의 가능성도 보인다. 최근 미국 국립장애재활연구원의 지원으로 피츠버그대학교, 퍼듀대학교, 보잉 등이 함께하는 ‘RERC on Move It’ 국가 프로젝트를 통해 휠체어 기내 탑승의 공학적 안전성을 증명하는 연구들이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피츠버그공항에 도착하니 예전과 구조가 조금 달라져 있었다. 과거에는 게이트에서 나와 이동하는 길에 미스터 로저스의 따뜻한 사진이 방문객을 맞이했는데, 이제는 보이지 않았다. 그는 1968년부터 2001년까지 방영된 TV 프로그램 「Mister Rogers’ Neighborhood」의 진행자로, 피츠버그의 상징 같은 인물이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오니 트램도 없어졌고, 바로 수하물 찾는 곳이 나왔다. 그곳에서 주차장과 버스정류장이 연결되어 있었다. 우리는 짐을 찾고 앱으로 버스표를 구매했다. 공항에서 출발한 버스는 로빈슨타운십 쇼핑몰 지역을 지나, 세 강이 만나는 포인트파크를 내려다보며, 철강 도시의 상징적 관문인 노란 철교 포트피트 브리지를 건넜다. 다운타운을 지나 피츠버그대학교와 카네기멜론대학교를 거쳐 멜론파크에서 내렸다.

공원을 가로질러가니 피츠버그 신시가지의 중심인 베이커리스퀘어가 나왔다. 그 안에 있는 스프링힐 호텔로 들어섰다. 이 호텔의 장애인룸은 내가 경험해본 곳 중 세계 최고의 장애인룸이다.

드디어, 제2의 고향 피츠버그의 내 방에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