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츠버그 베이커리 스퀘어 전경. 과거 나비스코 빵공장이 있던 이곳은 현재 구글 피츠버그 캠퍼스와 피츠버그대학교 재활과학기술학과, HERL 연구실 등이 들어선 혁신 거점으로 변신했다. (사진 자료=Bakery Square 홈페이지 갈무리, 김종배 교수 제공)

애틀랜타에서 피츠버그로 이동해 메리어트 스프링힐 베이커리 스퀘어에 도착했다. 늘 머무는 408호 장애인룸에 짐을 풀고, 휠체어 시트를 뒤로 젖힌다. 그리고 잠시 ‘릴렉스’. 창밖을 바라본다.

지금 내가 쉬고 있는 베이커리 스퀘어는 20세기 초 미국 제조업의 번영을 지탱하던 나비스코(Nabisco)의 대규모 빵공장이 있던 자리다. 리츠 크래커를 만들던 이 공장은 당시 철강산업의 허브였던 피츠버그에서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노동자들의 허기를 채우며 밤낮없이 고소한 냄새를 풍겼을 것이다.

그 시기 피츠버그에서는 ‘철강 왕’ 앤드루 카네기, ‘석탄 왕’ 헨리 클레이 프릭, ‘금융 왕’ 앤드루 멜론, ‘식품 왕’ 헨리 하인즈 같은 대자본가들이 등장했다. 철강과 석탄, 금융과 식품 산업이 맞물리며 피츠버그는 미국 산업자본의 중심 도시로 성장했다.

이 지역 자본가들의 힘은 고등교육기관의 성장으로도 이어졌다. 피츠버그대학교(PITT)의 상징인 42층 석조 고딕 건물 ‘배움의 전당(Cathedral of Learning)’은 그 시대의 유산으로 남아 있다. 스테인드글라스가 아름답기로 유명한 하인즈 채플과 프릭 파인 아츠 빌딩 역시 지금도 피츠버그대학교의 대표적인 문화유산으로 위용을 자랑한다.

카네기멜론대학교(CMU)의 탄생도 피츠버그의 변신을 설명하는 중요한 장면이다. 1956년 최초의 인공지능 프로그램으로 알려진 ‘Logic Theorist’를 만든 허버트 사이먼과 앨런 뉴웰 교수가 컴퓨터 과학의 태동기를 이끌던 카네기 공과대학, 그리고 거대 산업기술 연구의 메카였던 멜론 연구소가 1967년 합병하면서 오늘날의 카네기멜론대학교가 탄생했다. 이 결합은 오늘날 피츠버그를 로보틱스와 신체 지능, 즉 Physical AI의 중심지로 만드는 결정적 기반이 되었다.

철강 도시에서 의료·로봇·재활공학 도시로

피츠버그 다운타운의 UPMC 간판. 과거 철강산업을 상징하던 도시는 의료·바이오·의공학 중심 도시로 전환하며 새로운 성장의 기반을 만들어가고 있다. (자료=UPMC 홈페이지 갈무리, 김종배 교수 제공)

피츠버그 의대의 조너스 소크 박사는 1953년 소아마비 백신을 세계 최초로 개발해 인류를 소아마비의 공포에서 구했다. 장기이식의 아버지라 불리는 토마스 스타즐 박사는 1981년 세계 최초의 간 이식을 성공시키며 피츠버그 의대를 세계 장기이식의 메카로 만들었다.

이 모든 성과는 오늘날 피츠버그의 거대한 의료 시스템인 UPMC, 즉 University of Pittsburgh Medical Center라는 헬스케어 통합 플랫폼의 기반이 되었다.

사실 내가 피츠버그에서 생활할 때만 해도 지금의 베이커리 스퀘어 일대를 자주 찾지는 않았다. 내가 살던 집과 가까워 멜론파크에는 자주 산책을 나갔지만, 인접한 옛 빵공장 건물 쪽은 일부러 가지 않았다. 철강산업이 쇠퇴하면서 피츠버그 강변의 공장들은 하나둘 문을 닫았고, 노동자들이 많이 살던 이 지역은 조금씩 슬럼화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박사학위를 마치고 박사후연구원으로 근무를 시작할 무렵, 피츠버그의 회복 탄력성은 눈에 띄게 드러나기 시작했다. 철강 공장들이 있던 모농가헬라강 강변 공업지역에 UPMC 사우스사이드 병원이 신축되면서 우리 과 연구실도 그곳으로 옮겨갔다. 내 연구실도 그곳에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잠시 준비 단계였다. 1년 뒤 베이커리 스퀘어 개발이 완료되면서 폐쇄되었던 빵공장은 완전히 다른 공간으로 변신했다. 4층에는 세계 최대 IT기업 구글의 피츠버그 캠퍼스가 들어섰고, 최근에는 길 건너편에 신축 건물을 추가로 지어 브리지로 연결할 만큼 성장했다.

2층과 지하에는 장애인을 위한 휠체어, 시팅, 의지보조기, 재활로봇, Physical AI 등 첨단 재활보조기술을 연구하는 피츠버그대학교 재활과학기술학과(RST)와 미국 보훈부(VA)가 공동 운영하는 인간공학연구소(HERL)의 연구실들이 채워졌다. 이곳은 이제 세계 재활공학 연구의 핵심 축이 되었다. 나 역시 한국 보건복지부 국립재활원이 재활연구소를 개소하며 초청해 귀국하기 전까지, 마지막 1년 동안 이 베이커리 스퀘어 2층에 연구실을 두고 있었다.

피츠버그는 철강산업을 중심으로 미국 최대 공업도시 중 하나로 번영했지만, 그 산업이 후발 주자인 유럽, 일본, 한국, 그리고 중국으로까지 넘어가면서 한때 쇠락의 길을 걷는 듯했다.

그러나 피츠버그대학교와 카네기멜론대학교를 중심으로 의료서비스, 의공학, 컴퓨터공학, 로봇공학, 환경공학이 성장하면서 미래산업으로의 전환에 성공했다. 굴뚝산업의 도시가 지식·바이오·의공학의 도시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피츠버그 다운타운 최고층 건물에서 과거 굴뚝산업의 상징이던 ‘US Steel’의 이름이 내려가고, 그 자리에 최대 고용주가 된 의료·바이오 테크의 거인 ‘UPMC’ 간판이 걸린 장면은 그 세대교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2009년 G20 정상회의 개최지로 뉴욕이나 워싱턴이 아닌 피츠버그를 지목했다. 당시 오바마 대통령은 피츠버그를 “쇠락한 전통 산업 도시가 첨단 의학, 바이오, 친환경 기술, 로봇 산업을 통해 어떻게 미래 경제의 모델로 재탄생할 수 있는지를 전 세계에 보여주는 상징”으로 평가했다. 그만큼 피츠버그의 변화는 한 도시의 재개발을 넘어, 산업 전환의 대표 사례로 주목받고 있었다.

세계 최고의 장애인룸이라 느낀 이유

피츠버그 스프링힐 호텔의 장애인 접근 가능 객실 내부. 넓은 동선과 분리된 생활 공간은 전동휠체어 이용자의 숙박 접근성을 보여준다. (자료=스프링힐 호텔 홈페이지 갈무리, 김종배 교수 제공)
피츠버그 스프링힐 호텔의 장애인 접근 가능 객실 내부. 넓은 동선과 분리된 생활 공간은 전동휠체어 이용자의 숙박 접근성을 보여준다. (자료=스프링힐 호텔 홈페이지 갈무리, 김종배 교수 제공)

이런 피츠버그가 나를 재활공학의 길로 이끌었다. 그리고 지금 나는 세계 재활공학의 중심지라 할 수 있는 베이커리 스퀘어의 호텔 장애인룸에서 안식을 취하고 있다.

처음에는 이 호텔을 그저 메리어트 계열의 비즈니스 호텔 정도로 생각했다. 하지만 귀국 후 다시 피츠버그를 방문할 때마다 로리 쿠퍼 교수가 당연하다는 듯 이곳 스프링힐 408호를 예약해주었고, 그 뒤로 피츠버그에 갈 때면 나도 자연스럽게 이 방을 이용하게 되었다.

왜일까.

첫째, 408호는 옆방 409호와 내부에서 연결되는 ‘커넥티드 룸’이다. 장애가 있는 사람이 활동지원자나 동행자와 함께 지낼 때, 연결된 방은 안전과 독립성을 동시에 보장해주는 중요한 조건이 된다.

둘째, 욕실과 화장실이 두 개다. 두 공간 모두 휠체어 사용자를 고려한 높이의 세면대와 변기 보조바를 갖추고 있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에는 턱이 없는 휠체어 롤인 샤워부스가 있고, 다른 하나에는 편리하게 트랜스퍼해 입욕할 수 있는 욕조가 있다는 점이다. 샤워와 목욕의 선택지가 모두 있는 것이다.

셋째, 아메리칸 브렉퍼스트가 제공된다. 에그머핀, 베이글, 오트밀, 커피, 차, 주스, 우유, 요거트, 바나나, 사과 등 간단하지만 필요한 것은 다 갖춘 조식이 추가 요금 없이 제공된다.

넷째, 무엇보다 접근성이다. 미국에서는 휠체어 접근성이 어느 정도 당연한 ‘노멀’이지만, 이 호텔의 장점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2층에서 피츠버그대학교 RST와 HERL 연구소로 건물이 연결되어 있다. 비가 와도, 눈이 와도 연구진을 만나러 가는 길에 번거로움이 거의 없다. 휠체어 사용자에게 이 차이는 매우 크다.

장애인 접근 가능 객실의 욕실. 보조바와 샤워 의자 등은 휠체어 이용자가 안전하게 씻고 이동하기 위해 필요한 기본 설비다. (자료=호텔 홈페이지 갈무리, 김종배 교수 제공)
장애인 접근 가능 객실의 욕실. 보조바와 샤워 의자 등은 휠체어 이용자가 안전하게 씻고 이동하기 위해 필요한 기본 설비다. (자료=호텔 홈페이지 갈무리, 김종배 교수 제공)

한국의 호텔 접근성을 떠올리다

이 대목에서 한국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2003년쯤 미국에 와서 처음 한국을 방문했을 때였다. 사업을 하는 친구가 VIP 손님용으로 서울의 최고급 호텔 회원권이 있다며 코엑스 인터컨티넨탈호텔을 예약해주었다.

장애인룸을 예약했다고 했지만, 안내받은 방은 휠체어로 화장실 접근 자체가 불가능했다. 너무 어처구니가 없어 항의하자, 호텔은 응접실과 사무실, 화장실이 딸린 최고급 프레지덴셜 스위트룸으로 바꿔주었다. 뜻밖의 호사였지만, 정작 장애인룸의 현실은 씁쓸했다.

12년 뒤인 2015년, HCI 분야 세계 최대 학회인 CHI 2015가 아시아 최초로 서울에서 열렸을 때 나는 인프라스트럭처 접근성 체어를 맡았다. 대회장소인 코엑스와 주변 7개 특급호텔의 접근성을 조사해 대회 홈페이지를 통해 장애인 참가자들에게 대회장과 호텔 객실의 접근성 정보를 제공하는 일이었다.

그때 다시 한 번 놀랐다. 서울 최고의 호텔들조차 장애인 객실을 제대로 갖춘 곳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동네 모텔도 기본적으로 갖추고 있는 것들이 한국의 특급호텔에서는 여전히 부족했다.

그래서 ‘Accessible Tour in Korea’, 즉 접근 가능한 한국관광 계획서를 만들어 문화체육관광부 관계자를 찾아가 호소한 적도 있다. 그러나 다시 10년이 넘게 지난 지금, 한국의 숙박시설과 리조트 접근성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아직도 워크숍이나 학회가 열리는 리조트에 가면, 객실 현관에 신발을 벗고 올라가는 턱이 있는 경우를 자주 만난다.

우리에게도 장애인차별금지법,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 배리어프리 인증제도 같은 법과 제도는 있다. 그러나 지키지 않았을 때의 책임과 제재가 충분히 분명하지 않다. 안 지켜도 강한 불이익이 없으면 사회는 쉽게 바뀌지 않는다.

피츠버그의 408호 장애인룸에서 쉬며 나는 다시 생각한다. 접근성은 특별한 배려가 아니다. 누군가에게는 여행의 가능성을 열어주는 기본 조건이고, 누군가에게는 존엄하게 머물 수 있는 최소한의 권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