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배 교수가 피츠버그 베이커리 스퀘어 앞에서 박사과정 지도교수였던 데이비드 브리엔자 교수(맨 오른쪽)와 다시 만났다. 브리엔자 교수는 휠체어 착석과 연부조직 생체역학, 욕창 예방 방석·매트리스 평가 분야의 세계적 연구자로 평가된다. 사진=김종배 교수 제공
김종배 교수가 피츠버그 베이커리 스퀘어 앞에서 박사과정 지도교수였던 데이비드 브리엔자 교수(맨 오른쪽)와 다시 만났다. 브리엔자 교수는 휠체어 착석과 연부조직 생체역학, 욕창 예방 방석·매트리스 평가 분야의 세계적 연구자로 평가된다. 사진=김종배 교수 제공

스프링힐호텔 408호에서 잘 쉬고, 이제 피츠버그에서의 공식 일정을 시작한다.

첫 번째 일정은 나의 박사과정 지도교수이자 영원한 멘토인 데이브, 데이비드 브리엔자 교수를 만나는 것이다.

이번에 데이브를 만나는 데는 특별한 목적이 있었다. 한국에서 욕창 예방 방석과 매트리스를 개발하는 스타트업 회사가 미국 시장 진출을 준비하고 있었고, 데이브의 실험실에서 중요한 시험인증을 받을 수 있도록 돕기로 했기 때문이다.

오전 10시 약속에 맞춰 호텔 로비에서 김 대표를 만났다. 우리는 베이커리 스퀘어 2층에 있는 피츠버그대학교 보건재활과학대학(SHRS) 재활과학기술학과(RST) 사무실로 향했다. 1층 입구에 도착하자 데이브가 이미 나와 있었다. 그는 우리를 기다리며 문을 열어주려 하고 있었다.

나와 데이브는 크게 허그를 하며 반가움을 나눴다. 그는 내가 미국에 있는 동안 지도교수이자 연구과제의 동료였고, 교수의 길을 걷도록 이끌어준 멘토였다. 우리는 7년 동안 함께 연구했고, 지금까지 25년간 절친한 친구로 지내고 있다.

브리엔자 교수는 휠체어 착석(Seating)과 연부조직 생체역학(Soft Tissue Biomechanics) 분야의 세계적인 석학이다. 특히 욕창 예방 기술 개발을 선도해온 재활공학 연구자다.

블리스텍의 김경범 대표를 데이브에게 소개한 뒤, 우리는 2층 RST 사무실로 들어갔다. 잠시 다른 연구실에 들러 예전 동료 교수들과 인사를 나누고, 회의 테이블에 앉아 김 대표와 회사를 자세히 소개했다. 그리고 오늘 우리가 이곳을 찾은 목적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회의를 마친 뒤 베이커리 스퀘어 식당에서 데이비드 브리엔자 교수(왼쪽)와 김종배 교수가 이야기를 나누며 사진 촬영을 위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두 사람은 지도교수와 제자로 만나 오랜 연구 동료이자 친구로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사진=김종배 교수 제공
회의를 마친 뒤 베이커리 스퀘어 식당에서 데이비드 브리엔자 교수(왼쪽)와 김종배 교수가 이야기를 나누며 사진 촬영을 위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두 사람은 지도교수와 제자로 만나 오랜 연구 동료이자 친구로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사진=김종배 교수 제공

욕창 예방의 표준을 만든 실험실

본격적인 논의를 위해 우리는 데이브의 ‘착석 및 연부조직 생체역학 연구소(Seating and Soft Tissue Biomechanics Laboratory)’로 향했다.

브리엔자 교수는 미국 국립욕창자문패널(NPIAP, National Pressure Injury Advisory Panel)의 의장과 이사로 오랜 기간 활동하며, 전 세계 욕창 예방 가이드라인과 용어 표준화에 깊이 관여해왔다.

그의 연구실은 미국 연방 의료보장 제도인 메디케어·메디케이드 서비스(CMS)가 욕창 예방 방석과 매트리스를 공적 급여 품목으로 분류할 때 적용하는 객관적 기준을 수립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또한 ISO 16840-2와 ANSI/RESNA WC-3 규격을 정립하는 데도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특히 이 연구실은 기존 장비로 단순히 제품을 시험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인체 둔부와 연부조직의 특성을 모사한 독창적인 모형 더미와 자동화 정밀 측정 장비를 직접 개발해 사용한다.

이 실험실에서는 미국 CMS 코드 분류와 ISO 국제표준에 따라 욕창 예방 방석과 매트리스의 물성을 검사한다.

주요 항목은 ▲Immersion(몰입·침하) ▲Envelopment(포위·감싸임) ▲Pressure Mapping/Pressure Distribution(압력 매핑·압력 분포) ▲Damping(진동 흡수) ▲Impact Damping(충격 흡수) ▲Hysteresis(이력 현상·에너지 손실 변형) ▲Horizontal Stiffness(수평 강도·전단 저항성) ▲Stability(안정성) ▲Force Deflection(하중 변형량·인덴테이션 포스 디플렉션) 등이다. 이곳에서 발급하는 성적서는 전 세계 제조사들이 CMS 코드를 획득하기 위해 거쳐야 하는 가장 신뢰받는 표준 관문 중 하나다.

욕창, 조용한 재앙이 된 이유

데이비드 브리엔자 교수 연구실에서 사용하는 욕창 예방 방석의 Envelopment. 사진=김종배 교수 제공
데이비드 브리엔자 교수 연구실에서 사용하는 욕창 예방 방석의 Envelopment. 사진=김종배 교수 제공

미국에서 욕창은 단순히 개별 환자의 위생이나 관리 소홀 문제로만 보지 않는다. 국가 보건 재정을 위협하는 조용한 재앙으로 다뤄진다.

욕창은 해마다 수많은 환자에게 발생하고, 심각한 경우 생명을 위협한다. 치료비 부담도 크다. 중증도에 따라 한 사람에게 수천만 원에서 많게는 억 단위의 의료비가 들어갈 수 있으며, 의료과실 소송의 주요 원인이 되기도 한다. 특히 심각한 조직 손상이 동반되는 3·4단계 욕창은 전체 환자 비율로는 많지 않지만, 치료 예산에서는 큰 비중을 차지한다.

이 때문에 욕창은 초기 단계에서 예방하고 관리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미국 보건당국은 적절한 간호와 장비, 즉 방석과 매트리스의 지원이 있다면 욕창의 상당 부분을 사전에 막을 수 있다고 본다. 이를 위해 국가 차원의 표준 가이드라인을 세우고, 검증된 제품에 공적 급여 코드를 부여하는 체계를 구축해온 것이다.

미국 정부는 병원 내에서 발생한 중증 욕창을 ‘절대로 일어나서는 안 되는 사건(Never Event)’으로 다룬다. 입원 당시에는 없었으나 입원 중 발생한 3·4단계 욕창에 대해서는 정부가 병원에 치료비를 지급하지 않는 방식으로 강력한 책임을 묻는다. 욕창 발생률이 높은 병원에는 메디케어 환급금 삭감이라는 징벌적 조치도 시행된다.

이처럼 엄격한 제도를 집행하려면 “어떤 방석과 매트리스를 써야 욕창을 예방할 수 있는가”에 대한 객관적 기준이 필요하다. 병원이나 환자가 효과가 검증되지 않은 제품에 돈을 낭비하지 않도록, NPIAP와 브리엔자 교수 연구실 같은 공인 연구기관이 표준 시험규격을 만들고 검증하는 역할을 맡는 것이다.

스승의 실험실에서 되살아난 세월

데이비드 브리엔자 교수의 아들이 피츠버그대학교 실험실에서 욕창 예방 방석의 시험 방법을 설명하고 있다. 어린 시절 김종배 교수의 기억 속에 있던 아이는 이제 엔지니어가 되어 아버지의 연구실에서 방석과 매트리스 평가를 맡고 있다. 사진=김종배 교수 제공
데이비드 브리엔자 교수의 아들이 피츠버그대학교 실험실에서 욕창 예방 방석의 시험 방법을 설명하고 있다. 어린 시절 김종배 교수의 기억 속에 있던 아이는 이제 엔지니어가 되어 아버지의 연구실에서 방석과 매트리스 평가를 맡고 있다. 사진=김종배 교수 제공

브리엔자 교수의 연구실에 들어서자 각종 실험 장비와 방석들이 눈에 들어왔다. 최근 심사를 받은 네덜란드 회사의 VICAIR 제품과 한국의 NSBS 제품도 보였다.

마음이 뭉클해졌다. 예전 내 연구실 옆에 있던 실험실은 이제 베이커리 스퀘어로 옮겨왔지만, 실험실 안의 분위기는 여전히 익숙했다. 옛 기억이 문득 스쳐 지나갔다.

실험실에서 실제 시험을 맡고 있는 연구원이 있었는데, 데이브가 자기 아들이라고 소개했다. 아니, 아들이라고? 예전에 초등학생이었던 아이가 대학을 졸업하고 엔지니어가 되어 아버지의 실험실에서 방석과 매트리스를 시험하고 있었다.

데이브의 집은 피츠버그 북쪽, 농장과 저택이 있는 지역에 있었다. 석판 지붕을 얹은, 한때 유명한 건축가가 지었다는 집이었다. 여름이면 그 집에서 연구실 연구원들과 가까운 교수 가족들을 모두 초대해 바비큐 파티를 열곤 했다.

그때 데이브 집에는 아이가 넷이나 있었다. 모두 아들이었고, 막내는 겨우 두세 살쯤이었다. 가장 큰아이는 우리 딸과 나이가 비슷해서 함께 트리하우스에 올라가 놀기도 하고, 나무에 로프로 매단 타이어 스윙을 타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 아이가 이제 수염을 기른 어른이 되어 데이브의 실험실에서 실험을 담당하고 있다니, 기특하기도 하고 세월이 참 빠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미국에 갔을 때는 아이가 네 명이나 되는 데이브가 참 부러웠다. 그런데 그다음 해였던가, 또 아이를 낳았는데 이번에는 딸이라며 좋아서 어쩔 줄 몰라 했다. 얼마 뒤에는 또 딸을 낳았다. 아들 넷에 딸 둘. 그야말로 딸기 아빠까지 된 것이다.

그 딸 로즈가 조지아텍에서 디자인을 전공했다고 데이브는 자랑했다. 아이가 여섯이나 되자 그는 아예 차를 벤츠 스프린터 밴으로 바꿨다. 그때 나는 아내와 함께 “데이브는 아예 유치원을 차렸네!” 하며 웃었던 기억이 난다.

이제 데이브도 나도 은퇴를 준비하고 있다. 데이브는 아이들도 다 컸으니 교외의 큰 집을 팔고, 다운타운 포인트파크 근처의 작은 집을 사서 이사하려고 리모델링 중이라고 했다.

노년은 양평보다 광화문이다. 고궁, 미술관, 공연장, 식당, 병원이 가까운 도심이 답이다. 다만 서울 도심은 너무 비싸다. 피츠버그는 조금 덜 비싼 것 같다. 그럼 나도 피츠버그 다운타운으로 이사를 와볼까?

우리는 그렇게 노년을 준비하고 있다.

데이브 브리엔자 교수가 평생 연구해온 욕창 예방 방석과 매트리스를 우리가 모두 쓰게 될 날도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