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봉 아래 탑사 대웅전과 주변의 돌탑들. ⓒ소셜포커스휠체어에 몸을 싣고 찾은 마이산. 마이산은 말의 귀를 닮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전북 진안의 명산이자 그 일대는 도립공원이다. 처음 마주한 마이산은 거대한 조형물 같았다. 암마이봉과 숫마이봉, 두 개의 봉우리는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마치 하늘과 땅을 잇는 대문처럼 느껴졌다.
마이봉은 형상뿐만 아니라 지질 또한 어디에서도 보기 힘든 매우 독특한 구조다. 다양한 화성암 자갈들이 섞여 있고, 그 사이를 모래와 진흙이 채우고 있는 역암이라고 하는 하나의 거대한 바위다. 뾰족한 봉우리, 절벽에 난 깊은 홈, 거칠고 깎인 표면은 수천만년을 이어온 침식 작용이 만들어낸 예술이다
그 아래에 탑사라는 이름의 사찰이 자리하고 있다. 그 절은 일반적인 절과 달리, 사찰 건물 주변은 온통 신비한 돌탑들이 늘어 서 있다. 지형은 매우 심한 고도차를 보이고 있어 수많은 계단을 거쳐야 대웅전에 접근할 수 있다.
사실 마이산 탑사는 꼭 가보고 싶은 곳이었다. 그러나 마이산 탑사를 소개하는 수많은 영상물이나 방문기를 보면, 돌탑들이 고도 차가 심한 산비탈에 빼곡히 서 있는 모습이 나온다. 그 때문에 휠체어로는 접근조차 어려울 것이라는 선입감이 생겨, 감히 방문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접근할 수 없는 아름다움은 때론 서글픈 법이다.
그런데 그곳이 몇 년 전에 열린관광지로 지정된 곳이라는 사실을 우연히 알고서 방문에 나선 것이다. 걱정과 기대를 안고 마주한 마이산은 휠체어를 타고서도 사색과 감동의 여정을 허락해주는 품 넓은 장소였다.
탑사로 향하는 길은 예상보다 친절했다. 모든 차량은 탑사 입구의 주차장에서 주차를 하고 1.8km의 거리를 걸어 들어가야 한다. 그러나 장애인이 탑승한 차량은 탑사까지 들어갈 수 있다. 필자는 관리소의 허락을 받아 차량으로 이동했다. 이동하면서 차창밖으로 보이는 탑사로 가는 길은 완만하고 평탄한 구조인데다 숲속으로 데크로드가 잘 깔려있어서 괜히 차량으로 들어가는가 싶었다.
탑사에 들어서자 웅장한 마이봉을 배경으로 수많은 돌탑들이 시야를 가득 채웠다. 숨이 멎을 것같은 장관이었다. 높고 낮은 탑, 크고 작은 탑, 다듬어지지 않은 돌 하나하나가 기묘한 균형을 이루고 있다.
거대한 마이봉과 돌탑의 모습. ⓒ소셜포커스
돌탑 사이로 수평의 탑방로가 휠체어 접근을 환영한다. ⓒ소셜포커스돌탑의 역사는 그리 멀지 않지만 매우 독특하고 신비로운 이야기로 전해진다. 이 탑들은 이갑용(1860~1957) 처사가 종교적 열정에서 홀로 쌓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돌탑 사이로 이갑용 처사의 석상이 자리잡고 있다.
하늘을 찌를듯한 수직의 모습으로 숲을 이루고 있는 돌탑들은 조금만 건드려도 금방 넘어질 것 같은 아슬아슬한 모습이지만 아무리 심한 태풍에도 견뎌내면서 100년 이상을 이어왔다고 한다.
무질서 속의 질서, 혼돈 속의 조화, 돌과 돌 사이의 균형은 기적 같다. 인간의 의지는 결국 형상이 된다. 그것이 신념의 산물이든, 기도의 결실이든, 누군가의 시간을 건축물로 바꿔놓은 그 결과물 앞에서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탑사 방문에서 인상 깊었던 점은 탑사 일대가 일정 수준의 무장애 환경을 갖추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일부 구간에는 휠체어로 접근할 수 있는 경사로나 평탄한 통행로가 마련돼 있었다. 지형상 탑사의 대웅전까지 휠체어로 접근하기는 어려웠지만 몇몇 관람 포인트에는 휠체어 이용자를 배려한 낮은 턱도 눈에 띄었다. ‘모두를 위한 공간’이라는 의미를 실감할 수 있었다.
탑사입구에 늘어선 시비들의 모습. ⓒ소셜포커스
수많은 돌탑을 혼자 쌓았다는 이갑용 처사의 석상. ⓒ소셜포커스다만 한가지 아쉬운 점이 자칭 장애인 편의시설 전문가라는 필자의 눈을 피해가지는 못했다.
돌탑 숲 사이사이의 휠체어 관람로는 열린관광지를 조성하면서 개설한 것으로 보였다. 그런데 약 2미터 정도의 관람로 진입구간 두 곳의 경사가 너무 가팔랐다. 장애인등편의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4.8도를 초과한데다 양쪽에 보호 난간이나 경계턱이 없다. 휠체어가 조금만 방심해도 전복될 우려가 있다.
안전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지형 구조상 다소 가파른 기울기가 불가피하다면 통로 양쪽에 경계턱이나 돌탑 보호를 위한 펜스와 같은 모양의 보호 난간이라도 설치가 필요해 보였다. 이 문제는 관리 당국에 별도로 개선을 건의해 볼 생각이다.
장애를 가졌다는 이유로 여행지에서 물리적인 ‘단절’을 겪는 경우가 아직도 많다. 이동의 자유는 단지 바퀴가 굴러가는 일이 아니라, 삶의 질과 직결된 권리다. 그런 점에서 마이산 탑사는 완전한 배리어 프리는 아니지만, 누구나 접근 가능한 방향으로 조금씩 나아가고 있는 공간이었다.
돌탑 사이를 지나며 생각했다. 결국 우리 삶도 이런 돌탑과 같다. 매일의 노력과 인내를 한 돌, 한 돌 올려가며 무언가를 이루고자 하는 마음. 비록 균형은 위태로울지라도, 끊임없이 쌓아 올린 그 자체로 아름답다.
돌탑 탐방로 입구가 다소 가파르다. 핸드레일 필요. ⓒ소셜포커스
안전을 위한 핸드레일 필요한 돌탑 탐방로 입구. ⓒ소셜포커스탑사 구경을 마치고 나갈 때는 타고 온 리프트 차량을 먼저 보내고 들어올 때 봐두었던 숲속 데크로드를 따라 휠체어 라이딩을 즐기기로 했다. 휠체어로 이동하는 중간중간의 쉼터에서 숨을 고르며 자연의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나무 사이로 비치는 햇살과 산새 소리는 차분하게 걸음을 이끌었다.
데크로드는 탑사 앞에서 ‘탑영제’라는 저수지까지 약 600미터 구간이다. 데크로드를 나와 탑영제로 향했다.
저수지를 마주하는 순간, 마이산이 단지 돌과 땅으로 이루어진 산이 아니라, 하늘과 물과 빛으로도 만들어졌다는 걸 깨닫게 된다. 탑영제라 탑의 그림자를 볼 수 있다는 의미가 아닌가?
마이봉 두 개의 봉우리가 마치 물 위에 선 듯 서 있고, 그 아래 탑사에서부터 흘러온 여운이 물길 따라 퍼져나간다. 그래도 탑사와는 수백미터의 거리가 있어서 이름과 달리 탑영의 모습이 바로 물에 비치지는 않지만 탑사에서 받은 울림이 물 위에서 다시 되새김질 되는 것 같다.
탑영제 수면 위로도 데크로드가 깔려있다. 데크로드 위에서 보는 잔잔한 수면은 작은 바람에도 찰랑이며 햇빛을 흩뿌린다. 햇살이 물비늘 위에서 춤추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무언가 신성한 침묵이 이곳에 깃들어 있다는 생각이 든다. 푸른 호수는 마치 시간까지 담고 있는 듯 고요하다.
탑영제에서 나와 주차장까지 가는 길에는 금당사라는 절이 하나 더 있다. 그리고 상점가를 지나게 된다. 식당과 카페, 기념품 가게 등이 모여 있다. 상점가도 대부분 휠체어 접근성이 용이한 편이다.
탑사에는 다양한 방문객들이 찾는다. 유모차를 동반한 가족 단위 여행객, 고요한 시간을 원하는 중장년층, 생업을 은퇴하고 여가를 즐기는 말년의 노인, 그리고 필자와 같이 휠체어를 타고 천천히 걷는 이도 있다. 그 안에서 누구도 배제되지 않고 함께 어우러지는 풍경은 무엇보다 아름다웠다. 우리 사회가 가야 할 방향을 조용히 일러주는 듯하다.
탑사 외부 진입로 600m 구간의 데크로드. ⓒ소셜포커스
탑영제의 수면 데크와 주변 풍경. ⓒ소셜포커스
마이산의 역사를 소개하는 조형물. ⓒ소셜포커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