휠체어 명소 탐방기 ㉙ - 한탄강 Y자형 출렁다리
포천 한탄강 Y자형 출렁다리의 모습, Y자 중심이 공중에 떠 있다. 사진 왼쪽 윗부분은 가든페스타의 모습이다.한탄강 - 태고적부터 자연이 새긴 시간의 협곡
한탄강은 우리나라 최초로 강을 중심으로 형성된 지질공원으로서 약 54~12만 년 전 화산폭발로 인해 형성되었다고 한다. 그 당시 흐른 용암으로 인해 현무암 절벽, 주상절리와 폭포 등 다양하고 아름다운 지형과 경관을 갖게 되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이 협곡은 단순한 ‘계곡’이 아니라 대지가 새긴 지질의 기록이자, 시간의 문장이다. 한탄강 유역은 지질학적으로 동아시아에서 보기 드문 현무암 협곡으로 이루어진 지형이다. 북한의 평강에서 발원하여 강원도 철원, 그리고 경기도 포천과 연천을 흐르면서 많은 볼거리를 만들어낸다.
그러나 그 물결은 단순히 현재를 흐르는 것이 아니라, 수만 년의 역사를 되새기며 대지를 조각하고 있었다. 깎아지른 듯한 주상절리 절벽은 그 자체로 지구의 일기장 같다.
강가에 서면 바람이 불어온다. 그 바람은 새것이 아니다. 마치 태고의 숨결이 되살아나듯, 돌과 물 사이를 헤집으며 귓가를 스친다. 그 소리는 오래된 지구의 심장박동처럼 느리지만 힘이 있다.
한탄강 협곡의 모습누구에게나 열려있는 포천 한탄강 협곡의 Y자형 출렁다리
가을의 포천은 햇살이 부드럽고 하늘은 높았다. 산등성이마다 단풍이 불붙은 듯 타오르고, 강물 위의 들판은 억새의 은빛이 반짝였다. 한탄강 생태경관단지로 들어서는 길은 이미 가을의 향기로 가득했다. 차창 너머로 펼쳐진 용암대지의 검은 절벽 위에, 붉은 잎사귀가 살포시 내려앉고 있었다.
그 풍경 속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단연 Y자형 출렁다리다. 가을의 하늘과 강을 잇는 거대한 세갈래 곡선, 그 위를 걷는 사람들의 발걸음마다 계절이 흔들렸다. 그러나 이번 여행에서 내 눈길을 잡은 것은 단순히 그 풍경만이 아니었다.
험한 절벽 위에 놓인 이 다리에서, 누구도 소외되지 않도록 세심히 설계된 배려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출렁다리로 진입하는 타워는 한눈에 봐도 독특했다. 나선형으로 빙글빙글 감겨 올라가는 구조, 마치 거대한 소라의 속을 천천히 오르는 듯한 형태였다. 이것은 단순한 미적 장치가 아니었다. 휠체어 이용자와 유모차, 노약자도 스스로 오를 수 있는 ‘소라형 경사로’였다. 경사로는 완만했다. 완만한 경사로일수록 보행거리는 길어지지만, 요즘은 걷는 공간이 충분할수록 이용자가 힐링을 느끼는 우수한 시설로 평가된다.
바깥쪽 난간은 투명하여 오르는 동안에도 한탄강 협곡의 풍경이 시야에 들어왔다. 얇은 구름이 흘러가는 하늘, 멀리서 들려오는 물소리, 바람에 흔들리는 억새의 합창이 어우러졌다. 손으로 난간을 짚고 천천히 올라가는 사람들의 얼굴에는 두려움보다 설렘이 있었다. 그 통로는 단순한 구조물이 아니라 ‘희망의 통로’다.
포천 한탄강 Y자형 출렁다리 연결타워에 오르는 나선형 통로, 유모차를 끌고 올라가는 모습(하단 우측)에서 누구에게나 열려 있음을 알 수 있다.하늘 위의 다리 ― 흔들림 속의 자유
Y자형 출렁다리 위로 올라서자 가을의 하늘이 한층 가까워졌다. 길이 400미터에 이르는 다리는 세 갈래로 나뉘어, 각각 다른 풍경을 품고 있었다. 한 갈래는 강을 향해, 다른 갈래는 절벽을 따라, 또 다른 갈래는 정원과 전망대로 이어졌다.
바람이 불면 다리가 부드럽게 흔들렸고,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하늘로 번졌다. 발 아래로는 태고적에 형성된 깊고 검은 협곡이 펼쳐진다. 그 사이로 한탄강이 은빛 리본처럼 흐르고 있었다. 투명한 바닥 아래로 물결이 보였고, 그 위로 단풍잎이 흩날렸다. 출렁다리 양 옆 펜스의 그물망은 필자와 같이 고소공포증을 가진 사람에게도 마음의 안정을 가져다 준다.
하지만 놀라운 것은 이 높은 구조물임에도 불구하고 휠체어 이용자가 다리 위에 함께 있었다는 점이다. 입구에서부터 타워의 경사로를 거쳐 다리의 중앙부까지, 모든 구간이 경사로로 이어져 있다. 다리 위 난간의 높이도 휠체어 눈높이에 맞게 설계되어 있어, 앉은 채로도 풍경을 충분히 감상할 수 있었다.
다리 아래로는 험준한 협곡 사이로 강이 흐른다. 그곳에 서면 알게 된다. 이 강은 단순한 물줄기가 아니라, 시간이 흘러가는 모양 그 자체라는 것을.
바람은 여전히 절벽을 스치고, 새들은 그 위를 날며 노래한다. 그 모든 소리는 ‘지질’의 언어이자, 대지의 기도처럼 들린다. 돌은 변하지 않지만, 그 위의 인간은 배운다. 그리고 그 배움의 끝에서 우리는 이렇게 고백하게 된다.
“포천의 한탄강은 땅의 기억이자, 인간의 마음을 비추는 거울이다.”
한탄강 Y자형 출렁다리에서 전동휠체어 이용자가 통행하는 모습
필자가 전동휠체어를 타고 출렁다리 위에서 무지개 세례를 받고 있는 모습출렁다리 저쪽 전망대의 나선형 경사로 ― 끝까지 닿는 배려
출렁다리 반대편에는 유리벽으로 둘러싸인 전망타워가 서 있었다. 유난히 바람이 강하게 부는 절벽 끝자락이었지만, 이 역시 엘리베이터로 전망대 입구에 이르면 나선형 경사로가 전망탑 아래에서부터 전망공간까지 이어져 있어 휠체어 이동에 전혀 불편이 없었다. 이 시설은 단순한 편의가 아니라, 관광약자를 향한 확실한 약속이었다.
전망탑 통로의 창밖으로는 강물이 반짝이고, 멀리 비둘기낭 폭포의 물안개가 피어오른다. 그곳에서 바라본 한탄강의 가을은 말 그대로 ‘모두의 풍경’이었다.
전망대에서는 출렁다리 주변의 먼거리 풍경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고개를 들어 멀리 바라다 보면 포천의 산야가 파노라마처럼 열린다. 그 중에서 가을 축제가 열리고 있는 가든페스타의 가을 풍경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넓게 펼쳐진 잔디밭 위로 억새가 출렁이고, 가을 햇살이 반사되어 눈부시게 빛난다. 입구에는 포천의 상징을 담은 조형물이 서 있고, 그 옆으로는 코스모스와 백일홍이 바람결에 흔들린다. 꽃잎 하나하나가 햇살을 받아 반짝이며 “어서 오라”고 손짓하는 듯하다.
이곳의 설계자들은 단지 구조물을 만든 것이 아니라, 사람이 자연을 함께 누릴 수 있는 방식을 만들어낸 것이다.
출렁다리를 나와 전망대로 올라가는 나선형 통로는 안전하고 편리한 휠체어 통행이 가능하다.
출렁다리에 인접한 포천 가든페스타의 모습모든 지자체가 배워야 할 무장애 관광시설
전국의 많은 지자체들은 방문객 유치를 위해 엄청난 예산을 들여가며 많은 관광시설물을 건설해왔다. 그러나 이런 무장애 개념을 도입한 관광 인프라는 전국적으로도 드물다. 많은 지자체들이 ‘관광약자 접근성’을 구호로만 외칠 뿐, 실제 현장에서는 계단과 수많은 단차가 접근성을 방해한다. 그리고 준공 후 장애인 단체의 지적을 받고서야 문제를 인식하지만 이미 준공한 시설에 무장애 시설을 갖추기란 쉽지 않다. 예산낭비도 심하고 구조상 개선이 불가능한 경우도 많다.
하지만 포천의 이곳은 달랐다. 험한 지형, 협곡 위의 다리라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누구나 갈 수 있는 길’을 포기하지 않았다.
이곳에서는 장애인뿐 아니라, 노인, 아이, 유모차를 미는 부모, 다리가 불편한 여행자 모두가 똑같은 시선으로 한탄강을 바라본다. 그것이 바로 포천시가 보여준 관광의 품격이다.
시설은 단지 건축의 문제가 아니라, 배려의 철학이라는 것을 이곳은 증명하고 있었다. 다리는 단지 ‘지형을 잇는 구조물’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을 잇는 마음의 다리였다.
이 정신은 다른 지자체들이 반드시 배워야 할 부분이다. 무장애 설비는 비용이 아니라 가치이며, 배려는 행정의 마지막 단계가 아니라 출발점이어야 한다. 포천의 이 다리는 단순한 출렁다리가 아니라, ‘함께 걷는 사회’의 상징으로 남을 것이다.
원주 소금산 출렁다리 연결타워는 포천 한탄강 출렁다리 연결타워보다 훨씬 낮음에도 계단구조만으로 되어 있어 휠체어 접근이 불가능하다. 누구나 접근이 보장된 포천 Y자형 출렁다리가 돋보이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