휠체어 명소 탐방기 ㉚ - 강릉 선교장
강릉 선교장의 풍경강릉 선교장(船橋莊)은 조선 후기 상류 주거문화를 대표하는 국가민속문화유산으로, 강원도 강릉시 운정동에 자리한 대규모 한옥 단지다. 오늘날까지 300여 년이 넘도록 비교적 온전하게 보존·활용되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99칸의 전형적인 사대부가의 주택으로서 1965년 국가에서 중요민속자료로 지정했다. 원형이 잘 보존된 전통가옥으로, 주변의 자연경관과 조화를 이루며 명성을 이어오고 있다.
하늘이 족제비 무리를 통해 점지했다는 명당터인 선교장은 안채 주옥을 시작으로 동별당, 서별당, 연지당, 외별당, 사랑채, 중사랑, 행랑채, 사당들이 지어졌다. 큰대문을 비롯한 12대문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서 대장원을 연상케 한다.
한쪽에는 인공연못을 파고 정자를 지었다. 활래정이라 한다. 연못과 함께 경포호수의 경관을 바라보며 관동지방을 유람하는 조선의 선비와 풍류들의 안식처가 되었다. 만석꾼 곳간채에는 항상 곡식이 비축돼 있어 흉년이 들 경우 이를 이웃과 나누던 구휼의 역할을 했던 집안으로 알려져 있다.
예전에는 호수를 가로질러 배다리를 만들어 건너다니기도 했다고 전해온다. 그래서 선교장이다. 그 호수는 논이 되었고 대장원의 뒤 야산에 노송의 숲과 활래정의 연꽃 그리고 멀리 보이는 백두대간 사계절 변화의 모습을 바라보는 운치는 절경을 자랑한다.
이곳에는 원형 문화재 외에도 근대에 한옥으로 지은 박물관 및 체험시설 등 다양한 건물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선교장박물관의 내부모습
선교장 고택과 한옥스테이로 제공하는 실내모습(사진=선교장 홈페이지 자료)필자가 최근 이곳을 방문했다.
입구의 매표소에는 강릉시민은 입장료가 무료이고 장애인은 3천 원, 그 외에는 5천 원이라고 안내하고 있었다.
보통 이런 박물관 등이 포함된 문화공간의 경우 방문객들에게 입장료를 받더라도 장애인은 무료입장인 경우가 많다. 매표원에게 “장애인도 요금을 내야 하느냐?”고 물었더니 “개인소유 시설이라서 어쩔 수 없다”고 했다.
“개인소유 시설이라면서 방문객이 가장 많을 것으로 생각되는 강릉시민은 왜 무료입장이냐?”고 했더니, 그건 자기도 모르겠다고 했다.
실제 소유자와 운영사 및 강릉시와 관계를 알아봤다. 토지와 고택은 개인소유로 확인되었다. 그러나 민속관, 체험시설, 근린생활시설 등의 건물은 그게 아니었다. 5동의 건물이 등기상 소유자가 강릉시로 확인되었다. 건물 전체의 면적을 기준으로 하면 절반 이상이 강릉시 소유다.
소유자와 강릉시로부터 위탁받아 운영하는 회사는 “주식회사 배○○문화원”이다. 강릉시는 매년 문화재 관리유지 등을 위해 상당한 예산을 지원한다. 시청 관계자는 금년에만 1억원 이상이 지출되었다고 했다. 민간시설이라고만 보기는 어려운 공공성을 지닌 공중시설이다.
그리고 배○○문화원의 법인 등기부에 의하면 선교장 관리용역 및 선교장 내 한국전통문화체험관 위탁관리사업, 장애인 등 취약계층에 대한 문화예술서비스 등을 사업목적으로 하고 있다.
아무튼 입장료를 내고 들어갔다. 매표소 왼쪽에는 박물관 건물이 자리하고 있었으며, 건물은 약 네 계단 높이의 기단 위에 지어져 있었다. 상당한 단차에도 불구하고 경사로가 설치돼 있었다.
그러나 박물관 출입구에는 한 뼘도 되지 않는 단차가 있어 휠체어 이용자의 출입을 가로막고 있었다. 해당 출입구를 통과하지 않고서는 경사로가 설치된 박물관 내부로 진입할 수 없는 구조였다. 장애인 등 취약계층에 대한 문화예술서비스 제공을 사업목적으로 하는 법인이 운영하는 시설에서 접근성이 이처럼 배제된 현실은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
선교장 경내는 지형상 고도차가 별로 없는 평지나 마찬가지다. 그러나 장애인에 대한 장벽은 곳곳에서 드러났다.
박물관을 나서면 비교적 큰 규모의 연못이 자리하고 있다. 연못 가에는 활래정이라는 정자가 있다. 연못 한가운데 인공섬은 소나무가 운치를 더하고 있으며, 수면 위로 인공섬까지 통행이 가능한 수평구조의 데크로드가 설치되어 있다. 휠체어도 충분히 통행할 수 있는 폭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데크로드 입구에는 사각으로 다듬어진 석재 구조물이 설치돼 있어 휠체어 이용자의 출입을 가로막고 있다. 결과적으로 이동약자의 접근을 차단하는 구조다.
선교장 박물관 건물은 경사로가 있으나 진입로의 단차로 인해 휠체어 출입이 불가능하다.
연못의 수면데크로 통하는 길을 가로막고 있는 석재 구조물탐방로를 돌다 보면 부분적으로 약간의 높이차이가 있는 통로를 자주 만나게 된다. 대부분 계단이 아닌 경사로 구조다. 그러나 노면은 한결같이 자연석을 깔아놓아 요철이 심하다. 휠체어나 유아차, 실버카 등을 이용하는 사람은 통행이 불가능하다.
경사로 구조를 갖춘 점에서 이동약자를 고려한 의도는 엿보이지만, 실제 통행이 불가능해 결과적으로 이동약자에게 새로운 제약을 만들고 있다. 보행로 노면에 자연석을 사용하는 공법은 공공시설의 접근성 측면에서 재검토가 필요하다.
선교장 경내의 중심부엔 강릉시 소유의 규모가 제법 큰 근대식 한옥 건물이 있다. 전통 다과와 한식을 체험할 수 있는 카페 용도다. 이곳은 세미나, 음악회, 낭송회 등 각종 문화행사 등을 목적으로 대관도 가능하다.
그러나 이곳 역시 장애인 접근이 제한된 시설이다. 주출입구에 문턱과 단차가 있어 휠체어 등을 이용하는 이동약자는 출입이 불가능하다. 전통차와 전통 다식을 즐겨온 필자 또한 건물 앞에서 발길을 돌려야 했다.
이곳에서 어떤 문화행사가 열리더라도 휠체어 이용자의 참여는 배제될 수밖에 없다. 건물주인 강릉시와 장애인 문화지원을 사업목적으로 표방한 운영사 모두 이러한 차별 구조에 대한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탐방로 곳곳의 경사로는 자연석 노면으로 인한 요철이 심하여 휠체어가 이동하기 어렵다.
전통한식과 다식을 체험하거나 각종 문화행사가 열리는 건물은 단차로 인하여 휠체어 출입이 불가능하다.선교장 내에는 박물관 말고도 생활유물 전시관, 기획전시실 등 한옥을 이용한 전시공간이 많다. 고택도 별서당, 연지당, 행랑채 등에서는 한옥스테이 시설을 운영하며 관광객들에게 숙박시설로 제공한다.
그러나 이러한 공간들도 한결같이 휠체어 출입은 불가능하다. 한옥의 구조상 어쩔 수 없다는 핑계를 대겠지만 서울의 고궁들처럼 조금만 생각을 바꾸면 얼마든지 대안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선교장 뒷산은 얕은 동산이다. 얼마든지 무장애 산책로가 가능한 지형인데도 대부분 계단구조다. 휠체어 통행이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고령화 시대의 생활환경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 제4조에 의하면 “장애인에게 정당한 편의 제공을 거부하는 경우”에도 장애인 차별행위에 해당하며, '정당한 편의'란 “장애인이 장애가 없는 사람과 동등한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편의시설 설치 등 제반 조치를 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강릉시는 직접 소유한 건물부터라도 관광약자 편의시설을 갖추어야 한다. 아울러 민간시설에 대해서도 행정지도를 통해 편의시설을 갖추도록 유도해야 한다. 강릉시민은 무료로 입장할 수 있으면서 장애인에게 요금을 부과하는 현행 입장료 체계 역시 합리적으로 개선할 필요가 있다.
더구나 강릉시는 2022년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국내 최초 ‘무장애 관광도시’로 선정돼 3년간 최대 40억 원의 국비 지원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선교장과 같은 관광약자 취약시설 개선에 투자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은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
생활유물 전시관 등 각종 전시공간과 탐방로는 단차로 인하여 휠체어 등을 이용하는 관광약자의 통행이 어렵다.
선교장 뒷산은 얼마든지 무장애 산책로가 가능한 지형임에도 대부분 계단구조라서 장애인과 초고령 노인 등 관광약자는 이용하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