휠체어 명소 탐방기 ㉜ – 비슬산 참꽃 평원
분홍색 참꽃이 만개한 해발 1,084m 비슬산 정상의 참꽃평원 대구 달성군에 있는 비슬산 정상의 해발 1,084m의 능선에는 매년 봄 분홍빛으로 물든다. 이곳은 국내 최대 규모의 참꽃 군락지로 유명하여 매년 참꽃철이면 전국에서 수많은 상춘객들이 찾아온다. 특히 금년 4월 하순에는 7년 만에 가장 아름답게 피었다고 하여 전국에서 더 많은 관광객이 몰려왔다. 필자는 지난 4월 22일에 그곳을 다녀왔다.
비슬산 참꽃 투어를 위해서는 산기슭의 비슬산자연휴양림 입구에서 산 정상까지 운행하는 20인승 전기차를 이용하게 된다. 달성군립 비슬산자연휴양림에서 운영하는 비슬산투어관광버스다. 국내 최초로 해발 1,000m 이상의 산악구간을 주행하며, 5.8km 구간에 왕복 1시간 정도 걸린다. 휴양림이 보유한 4대의 셔틀버스 중 1대는 휠체어 탑승이 가능하도록 개조하였다. 그리고 휠체어를 이용하는 관광약자를 전담하여 운영하는 차량(스타리아)도 따로 갖추고 있다.
전국에 많은 관광지가 있고 지자체 예산으로 개발‧운영하는 테마형 관광지도 계속 늘어나고 있다. 그러한 관광지에서 관람차나 케이블카 등을 운영하는 곳도 많지만 전동휠체어 탑승시설까지 갖춘 시설은 드물다. 특히 험준한 산악길을 뚫고 높은 정상까지 휠체어 장애인을 태우고 운행하는 차량은 다른 지자체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달성군은 참꽃 절정기에는 외부 차량 10대를 추가로 확보해 셔틀버스를 전면 무료로 운영한다. 강원도 어느 도시는 시설공단이 운영하는 케이블카 요금을 해당 도시 주민에겐 6,000원을 받고, 장애인(타지역)에겐 12,000원, 타지역 관광객에겐 3배나 되는 18,000원을 받는 어이없는 경우(본지 2025.11.28.자 칼럼 참조)와 비교하니 더욱 빛나 보인다.
비슬산은 늘 그 자리에 있었지만, 참꽃이 활짝 핀 그날의 비슬산은 달랐다. 사람들은 그것을 ‘만개’라 부르지만, 말로는 부족했다. 산은 꽃을 피운 것이 아니라, 스스로 꽃이 되어 있었다.
아침 일찍 수원에서 출발하여 동대구역에 도착했다. 동대구역에서 다시 장애인콜택시(대구에서는 ‘나들이콜’이라 함)를 불러 타고 갔다. 정오 전에 도착했는데도 비슬산자연휴양림 입구의 비슬산 투어 셔틀버스 매표소는 이미 그날 운행 가능한 모든 티켓이 마감되었다는 안내문이 게시됐다. 매표소 주변에는 탑승을 대기하는 관광객들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휴양림 관계자들의 관광약자에 대한 배려로 필자에게 필요한 장애인석은 다행히 남아 있었다.
휠체어를 상시 이용하는 필자에게 산은 늘 ‘멀리서 바라보는 대상’이었는데, 그날은 달랐다. 달성군이 마련한 리프트 차량이 조용히 다가왔다. 그 안에는 분명한 온기가 담겨 있었다. 누군가의 고민과 시간, 그리고 ‘함께 보자’는 마음이 만들어낸 길이었다.
비슬산의 '비(琵)'와 '슬(瑟)'은 모두 거문고를 뜻한다. 산 정상에 있는 바위들의 모습이 마치 신선이 거문고를 타는 형상을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스타리아에 휠체어를 고정하고 산을 오르는 길은 마치 하늘로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를 탄 기분이었다. 차량이 천천히 고도를 높일수록, 세상의 높낮이에 대한 감각도 조금씩 바뀌었다. 험준하고 아찔한 급경사 길을 요리조리 헤쳐가며 거침없이 올라간다. 다른 곳에서는 오를 수 없음이 곧 경계였지만, 그날은 오르는 과정 자체가 이미 환대였다.
달성군이 휠체어 등을 이용하는 관광약자들을 위해 운영중인 특수차량과 탑승을 대기하는 사람들
비슬산 기슭의 자연휴양림과 산림치유센터, 독서공간 및 시화전의 작품 등산꼭대기 능선에 도착했을 때, 참꽃보다 먼저 반기는 것은 휠체어 이동이 가능하도록 만들어진 수평 데크로드였다. 데크로드 아래로 아득하게 멀리, 그리고 겹겹이 펼쳐진 계곡과 산하의 모습은 가슴을 뻥 뚫어 놓았다.
그리고 능선을 따라 계속 이어지는 데크로드를 따라가자 난간 사이로 참꽃들이 예고편처럼 조금씩 자태를 뽐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절반 지점에 이르렀을 때 현실이라고 믿기 힘든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약 30만평에 달하는 광활한 평원이 온통 연분홍 참꽃으로 뒤덮여 있었다. 끝없이 펼쳐진 참꽃 군락은 마치 신선이 하늘에서 분홍색 비단 자락을 떨군 듯했다.
바람이 불었다. 꽃잎은 흔들렸지만 흩어지지 않았고, 색은 오히려 짙어졌다. 그 풍경 앞에서 나는 ‘본다’는 행위가 얼마나 제한적인 것인지 깨달았다. 눈으로 보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다. 가슴으로, 그리고 지나온 시간으로 함께 느껴야 비로소 닿는 풍경이었다.
달성군의 배려는 단순한 ‘편의’가 아니었다. 그것은 ‘당연히 함께 있어야 할 자리’를 되돌려주는 일이었다. 산 정상의 바람을, 꽃의 향기를, 그리고 저 멀리 이어지는 능선의 흐름을 누구나 누릴 수 있도록 하는 것. 그것은 복지가 아니라, 풍경에 대한 권리였다.
'열린 관광지'라는 이름 뒤에는 수많은 고민이 있었을 것이다. 가파른 산길을 오르내리는 전용 셔틀버스를 마련하고, 휠체어가 걸림 없이 지나갈 수 있도록 길을 닦는 일은 단순히 예산의 문제를 넘어 '관광권'이라는 보이지 않는 권리를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 있어야 가능하다.
관광약자를 배려하는 이 고장의 또 다른 모범사례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이곳 지자체가 운영하는 사문진 나루터의 유람선이다. 소형 유람선에도 휠체어가 이용자가 쉽게 탈 수 있는 선착장을 마련하고 선박에 휠체어석을 마련한 것도 다른 지자체들이 꼭 본받아야 할 보기 드문 사례였다. (본지 2022.9.2.자 ‘사문진 나루터와 유람선, 장애인 접근성 돋보여’ 기사 참조)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그 자리에 머물렀다. 그리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산은 원래 높지 않았던 것이 아닐까? 장애인이 오르지 못하게 만들었던 것은 높이가 아니라, 사고의 부족이었을 뿐이라는 생각. 7년 만에 가장 아름답게 피었다는 참꽃은, 어쩌면 그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피어난 것인지도 모른다.
하산길로 향하면서 아쉬움에 다시 뒤를 돌아보았다. 분홍빛 능선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고, 바람은 여전히 그 위를 지나고 있었다. 그날의 비슬산은 단지 꽃이 아름다운 산이 아니었다. 사람이 사람에게 길이 되어주는 풍경, 그 자체로 하나의 봄이었다.
비슬산 1,000m 정상에 휠체어가 충분히 다닐 수 있도록 꾸며진 수평 데크로드
참꽃 평원 건너로 아스라이 펼쳐진 산천
비슬산 정상의 참꽃 평원의 풍경참꽃 평원을 구경하고 하산 차량을 이용하려고 조금 내려오면 바로 옆에 암벽을 병풍삼아 고요히 숨을 고르는 한 채의 절이 있다. 참꽃 평원 뒤쪽에 있는 대견사다. 절은 크지 않다. 오히려 소박하다. 그래서 더 깊다. 절의 배경이 되는 바위들은 비슬이라는 이름을 가져다 준 거문고의 모습이다. 절의 앞마당에서 봐도 주변의 산하가 한눈에 들어온다.
대견사는 신라 현덕왕 2년(서기 810년)에 창건된 고찰이다. 삼국유사의 저자인 일연 스님이 젊은 시절 이곳에서 수행했던 사찰로도 유명하다. 이곳의 신비로운 지형과 기운이 삼국유사의 집필에 영감을 주지는 않았을까?
법당 앞에 서면, 화려한 참꽃의 풍경이 물러나고, 대신 고요가 전면에 나선다. 사람들이 이곳까지 올라와 잠시 숨을 고르고, 다시 자신의 삶으로 내려갔을 수많은 시간들이 켜켜이 쌓여 있다.
휠체어에 앉아서 대견사를 바라보니 산 아래에서부터 이어진 배려의 길이 여기까지 닿아 있다는 사실도 새삼스럽게 다가왔다. 누군가의 손길이 아니었다면, 나는 이 고요에 닿지 못했을 것이다. 화려함과 고요함, 움직임과 멈춤, 그 두 풍경이 한 자리에서 만나는 곳. 비슬산 정상의 봄은 그래서 더욱 깊어진다.
비슬산 1,084m 고지에서 내려다 본 풍경
대견사의 풍경들산을 내려올 때도 리프트 차량 밖으로 봄이 한창 무르익었음을 알리는 연초록의 숲속 아치가 계속 이어졌다. 가파른 구간이 끝나고 완만해지는 구간에 이르자 하차를 요청하여 온몸으로 숲 기운을 만끽하며 휴양림 입구까지 휠체어로 이동했다.
이번 여행은 단순한 나들이가 아니었다. 비슬산 참꽃군락지는 단순히 '꽃이 많은 곳'이 아니었다. 휠체어로도 해발 1,000m 이상의 장관을 볼 수 있게 배려한 '길의 철학'이 있는 곳이다. 거문고 전설이 서린 바위와 천년 고찰의 이야기가 흐르는 '서사의 공간'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세상의 모든 느린 걸음들을 따뜻하게 품어주는 '위로의 평원'이었다.
집으로 돌아온 지금도 눈을 감으면 그 보랏빛 파도가 일렁인다. 비슬산 참꽃은 지더라도 마음속에는 지지 않는 꽃 한 송이가 깊이 뿌리를 내릴 것 같다. 세상의 문턱 앞에서 망설이는 모든 분께, 비슬산의 너른 품은 언제나 열려 있다는 말을 꼭 전하고 싶다. 여러 가지로 배려해준 달성군 시설공단 비슬산 관계 직원들에게도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다만, 매사에는 명암과 옥에 티가 있기 마련, 비슬산자연휴양림 또한 예외는 아닌 것 같다. 휴양림 숙박시설 등 관광약자를 위해서는 좀 더 개선해야 할 부분도 가끔 눈에 띄었다. 언제 만들어진 시설이냐에 따라서도 차이가 있을 것이다. 이 문제는 나중에 별도의 칼럼으로 다뤄볼 예정이다.
하산 버스를 대기하는 사람들
하산길의 풍경들, 하단좌측 사진은 천연기념물 435호로 지정된 암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