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항국제여객터미널 버스정류장과 만남의 광장에서 터미널 건물로 들어가는 입구의 모습부산항국제여객터미널(이하 ‘터미널’)은 우리나라의 대표적 여객 해상관문이다. 수많은 출입국 관광객과 시민들이 오가는 곳이며, 해외에서 배를 타고 한국에 오면 처음 만나는 공간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누구에게나 안전하고 편리해야 할 장소다.
부산 시내에서 터미널을 가기 위해 시내버스를 타고 터미널 앞에 도착하면 ‘만남의 광장’이 있다. 여기에서 일행을 만나 터미널로 들어가려면 50여 미터의 내리막 통로를 경유하여 길 하나 건너서 2번 출구로 들어간다.
그런데 만남의 광장에서 2번 출입구로 이어지는 통로가 문제다. 통로 입구에는 "기울기가 1/18이라는 안내표지판이 설치되어 있다. 1/18은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 시행규칙」등에 규정된 경사로의 안전을 위한 기울기의 상한선이다. 법령에는 사람이 통행하는 모든 경사로는 휠체어도 안전하게 통행할 수 있도록 기울기를 그 이하로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이 안내표지는 그 경사로가 법적 기준에 따라 안전하게 시공되었음을 알리고자 설치된 것으로 보인다. 사실 어딜 가나 이처럼 과할 정도의 친절한 안내표지는 찾아보기 힘들다. 굳이 이런 안내표시판까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휠체어 이용자가 터미널로 들어가기 위해 당연히 그 통로로 진입하게 된다. 더구나 그 통로는 안전한 기울기를 유지하고 있다는 안내표지까지 있으니 더욱 안심하고 진입할 것이다.
그런데 경사로를 따라 내려가면 끝부분에서 갑자기 단차가 나타난다. 단차를 발견한 순간 휠체어를 멈추려고 해도 내리막의 관성 때문에 그대로 통과하기 십상이다. 휠체어가 통과하는 순간 휠체어는 사람과 함께 그대로 앞으로 전복될 수밖에 없다.
휠체어가 앞으로 전복되면 얼굴이나 머리부터 바닥에 충돌할 가능성이 높다. 전동휠체어의 경우 100kg이 넘는 장비가 함께 넘어지기 때문에 중상으로 이어질 위험도 크다.
단차 앞에서는 단차가 보이기 때문에 진입을 포기할 수 있지만, 반대쪽에선 경사의 특성과 휠체어 이용자의 시선 높이에서는 단차가 보이지 않는다. 위험 요소를 미리 인식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휠체어 이용자에게 '안전하다'는 신뢰를 심어주는 공식 안내가 오히려 사고를 유발할 수 있는 치명적인 함정이 되고 말았다. 통로 끝에 남겨진 단차 하나가 안전한 이동공간이어야 할 시설 전체를 위험시설로 바꿔 놓은 것이다.
관계 법령에서 규정한 경사로의 기울기는 단순히 숫자만 맞추라는 것이 아니다. 교통약자가 안전하고 편리하게 이동할 수 있도록 시설을 설치·관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다시 말해 이용자의 실제 이동 과정 전체가 안전해야 한다는 의미다.
경사로 상부의 안내를 믿고 내려온 휠체어 이용자는 하단의 단차에서 사고를 당하기 쉽다.
휠체어의 눈높이에선 하단의 단차가 잘 보이지 않고 단순한 경계로만 보인다.그런데 터미널 편의시설의 문제는 위 사례만이 아니다. 만남의 광장에서 출발한 경사로는 터미널 건물에 이르러 길 하나를 건너면 2번 출입구가 나온다. 이 통로 역시 경사형 구조임에도 이번에는 법정 기울기를 크게 초과하여 휠체어 통행을 어렵게 한다.
1/18을 각도로 환산하면 3.2도가 되는데, 이곳을 측정해보니 16.4도가 나왔다. 법정 기준의 5배가 넘는다. 앞선 경사로에는 '기울기 1/18'이라는 안내판까지 설치된 점을 보면, 시설주관기관은 경사로의 법적 기준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다른 구간에서는 법정 기준을 크게 초과하는 경사로가 설치·관리되고 있다는 점은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
이 문제는 필자가 작년 4월에 부산항만공사에 시정을 요구하는 민원을 냈고, 시정하겠다는 약속까지 했다. 그런데 1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그대로 방치하고 있다. 누군가 큰 사고가 발생한 뒤에야 개선에 나설 것인가?
우리 사회는 장애인 이동권을 중요한 인권 문제로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이동권은 거창한 정책에서만 시작되지 않는다. 휠체어 이용자가 안심하고 경사로 하나를 내려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 바로 그것이 이동권의 출발점이다.
해외 관광객과 시민 모두가 이용하는 대한민국의 관문에서 장애인을 위한 편의시설이 오히려 위험시설로 방치되어 있다는 사실은 결코 가볍게 넘길 문제가 아니다.
경사로의 단차, 그리고 너무 가파른 기울기가 휠체어 통행을 가로막는다. 조봉현 전문기자bh1958@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