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연재는 전동휠체어를 타고 미국을 여행한 김종배 교수의 기록이다. 여행의 장면마다 장애인의 이동, 기술, 제도, 존엄에 관한 질문이 담겨 있다. 두 번째 글은 아틀랜타에서 만난 유니버설 디자인 연구자와, 높은 식탁 앞에서 경험한 복합재활기술의 의미를 따라간다. <편집자 주>

아틀랜타공항에서 김종배 교수가 2명의 공항 이동지원 직원의 도움을 받으며 Permobil M3 전동휠체어를 탄 채 셔틀버스 리프트에 오르고 있다. 시트 조절과 자세 변형 기능을 갖춘 이 전동휠체어는 중증장애인에게 단순한 이동수단을 넘어 독립적 생활을 가능하게 하는 복합재활기술 장비다. 사진=김종배 교수 제공
아틀랜타공항에서 김종배 교수가 2명의 공항 이동지원 직원의 도움을 받으며 Permobil M3 전동휠체어를 탄 채 셔틀버스 리프트에 오르고 있다. 시트 조절과 자세 변형 기능을 갖춘 이 전동휠체어는 중증장애인에게 단순한 이동수단을 넘어 독립적 생활을 가능하게 하는 복합재활기술 장비다. 사진=김종배 교수 제공

아틀랜타공항은 다른 대형 공항과 달리 공항 터미널과 대중교통 승차구역 사이에 트램을 운영하지 않는다. 대신 셔틀버스로 아틀랜타 전철 공항역까지 이동하도록 되어 있다.

우리는 MARTA(Metropolitan Atlanta Rapid Transit Authority, 광역아틀랜타교통공사)가 운영하는 전철을 타고 다운타운 피치트리역에서 내렸다. 거기서 휠체어로 한 블록 반 정도를 이동해 목적지인 메리어트 마퀴스 호텔에 도착했다.

호텔은 고급스럽다기보다 무척 컸다. 체크인을 마치고 객실에 들어가 짐을 내려놓은 뒤, 가장 먼저 장애인 객실의 편의시설이 제대로 갖춰져 있는지 확인했다. 워낙 큰 호텔인 데다 미국에는 강력한 인권법인 미국장애인법, 즉 ADA법이 있어서 특별한 문제는 없었다.

다만 내 전동휠체어의 좌면이 조금 높은 편이라, 상대적으로 침대 매트리스 윗면이 낮게 느껴졌다. 침대에서 휠체어로 옮겨 앉을 때는 이 선생님 혼자 힘으로는 쉽지 않아 함께 온 연구원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짐을 푼 뒤 긴 여행길을 지나온 만큼 잠시 호텔방에서 쉬기로 했다. 비즈니스석을 탔지만 이코노미석처럼 불편하게 이동한 탓에 몸이 많이 지쳐 있었다. 나는 전동휠체어의 시트를 뒤로 젖혀 침대처럼 만든 뒤 잠시 눈을 붙였다.

비행기에서 내리기 전에 조식을 충분히 먹은 덕분에 배는 그다지 고프지 않았다. 그리고 이제 드디어 미국 여행의 첫 번째 일정, 오후 4시에 예정된 GSU, 조지아주립대학교 존 산포드 교수와의 미팅을 위해 길을 나섰다.

구글 지도에 GSU의 Urban Life Building을 입력하니 걸어서 17분이 걸린다고 안내했다. 아틀랜타 다운타운과 GSU 캠퍼스를 구경할 겸 길을 나섰다.

미국의 많은 대학가가 그렇듯이, 이곳에도 특별한 교문이나 담장은 없었다. 상점과 회사, 기관 건물들 사이사이에 학교 건물이 자연스럽게 섞여 있었다. 조금씩 학교 건물들이 본격적으로 보이기 시작했고, 학생들도 많아졌다. 무슨 파티가 있는지 드레스를 입고 화장을 곱게 한 여학생들이 무리를 지어 지나갔다.

어느덧 목적지 건물에 도착했다. 산포드 교수에게 전화를 하자 그는 곧바로 건물 앞으로 나왔다. 그 건물은 작업치료학과를 포함해 보건 관련 학과들이 모여 있는 곳이었다. 우리는 4층 회의실에서 만났다.

조지아주립대에서 다시 만난 학문적 인연

김종배 교수(가운데)가 조지아주립대학교 회의실에서 존 산포드 교수(오른쪽)와 함께했다. 왼쪽은 동행한 연구원. 산포드 교수는 유니버설 디자인과 주택 접근성 평가, 스마트홈·로봇 기술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알려진 연구자다. 사진=김종배 교수 제공

존 산포드(Jon Sanford) 교수는 건축가로서 조지아텍에서 장애와 노화에 대응하는 기술을 연구하는 핵심 센터들을 이끌어온 학자다. 유니버설 디자인(Universal Design) 8원칙을 정립하는 데 기여했고, 스마트홈 및 로봇 기술(Smart & Robotic Homes) 개발을 주도했으며, 이동성 및 내비게이션 기술인 ALIGN App, 원격접근성평가시스템인 CASPAR 등의 개발을 이끌었다. 이 분야에서는 세계적으로 명성을 얻은 학자다.

나와 산포드 교수의 인연도 오래되었다. 내가 박사과정 학생이었을 때 VR을 이용한 원격 접근성 평가 기술을 개발하면서 산포드 교수의 CASPAR 연구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다. 또한 산포드 교수의 ‘작업장 접근성 개선 연구센터’ 프로젝트에 내가 세부 과제를 맡아 직접 참여하면서 학문적 인연을 이어왔다.

나처럼 척수손상을 입고 입원한 환자가 “손상된 척수가 다시 살아나고, 마비된 신체 기능이 회복되는 것은 어렵다”는 판정을 받게 되면, 병원은 이제 환자가 휠체어를 타고 사회에서 다시 자기 역할을 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준비시킨다. 퇴원 계획도 그 방향으로 세운다.

미국에서는 척수손상으로 입원한 환자가 빠르면 입원 3주 만에 퇴원하기도 한다. 빨리 학교나 직장, 가정으로 돌아가 다치기 전의 삶을 가능한 한 중단 없이 이어가게 하는 것이 재활의 중요한 목표이기 때문이다.

병원에서 지역사회 복귀를 준비시키는 과정에서 중요한 처치 중 하나가 환경수정이다. 이제 휠체어를 타고 살아가야 한다면, 집과 학교, 직장의 환경도 필요에 따라 바뀌어야 한다. 이 일은 작업치료사와 건축가가 협업할 때 가장 효과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

하지만 지역사회에는 이런 전문가가 충분하지 않다. 척수손상 장애인뿐 아니라 고령화 시대를 맞아 신체적 불편을 겪는 노인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이들이 자신이 살던 집에서 조금 더 편안하고 안전하게 오래 거주하기 위해서는 주택과 생활환경의 개조가 필수적이다.

병원 밖의 삶을 준비시키는 재활

존 산포드 교수는 2001년, 내가 미국으로 가던 무렵, 건축가로서 전문 작업치료사들과 함께 주택 접근성을 평가하는 도구인 CASPAR를 개발했다. 이 도구는 주택 접근성 평가에 대한 전문 지식과 경험이 부족한 지역 작업치료사들도 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체계적인 평가 도구다.

CASPAR는 그 집의 어느 부분을 고쳐야 하는지 기초적이면서도 체계적으로 조사할 수 있도록, 그림을 포함한 상세한 설문지를 소책자 형식으로 구성했다. 누구나 비교적 쉽게 사용할 수 있게 만든 것이다. 이 평가지를 작성해 전문가에게 보내면, 먼 곳에 있는 전문가들이 직접 현장을 방문하지 않아도 기본적인 평가와 자문이 가능해진다.

나는 미국에 있을 때 산포드 교수가 오래 근무한 조지아텍, 조지아공과대학을 꼭 한번 방문하려고 계획했었다. 그러나 갑자기 한국으로 돌아오게 되면서 직접 만나볼 기회를 갖지 못했다. 그러다 2년 전 그가 한국의 심포지엄에 초청되어 오면서 잠시 만날 기회가 있었고, 나는 꼭 미국으로 찾아뵙겠다고 약속했었다.

서로 같은 분야의 연구를 하면서도 미국에 있을 때는 만나지 못했는데, 늦게나마 직접 만나게 되니 무척 반가웠다. 산포드 교수와 직접 만나 나누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주고받으며 한 시간 넘게 따뜻한 대화를 나누었다.

하지만 만나면 헤어져야 하는 법이다. 건물을 나와 우리는 언제 다시 만날지 기약하지 못한 채 헤어졌다. 노교수는 자전거를 타고 길을 건너 저편으로 갔다. 나도 손을 흔들고 다시 숙소를 향해 길을 나섰다.

Tall Table 앞에서 올라간 시선

왼쪽부터 김종배 교수가 Tall Table 앞에서 전동휠체어의 시트 올림 기능을 사용하기 전(왼쪽 사진)과 후(가운데), 그리고 동행한 활동지원가 이 선생과 함께 식사를 즐기는 모습. 버튼 하나로 식탁 높이에 맞춰 앉는 이 기능은 중증장애인에게 식사와 대화, 사회적 참여를 가능하게 하는 CRT 전동휠체어의 핵심 기술이다. 사진=김종배 교수 제공
왼쪽부터 김종배 교수가 Tall Table 앞에서 전동휠체어의 시트 올림 기능을 사용하기 전(왼쪽 사진)과 후(가운데), 그리고 동행한 활동지원가 이 선생과 함께 식사를 즐기는 모습. 버튼 하나로 식탁 높이에 맞춰 앉는 이 기능은 중증장애인에게 식사와 대화, 사회적 참여를 가능하게 하는 CRT 전동휠체어의 핵심 기술이다. 사진=김종배 교수 제공

이번에는 일부러 왔던 길보다 한 블록 아래쪽 길로 갔다. 마찬가지로 곳곳에 상가와 주택, 학교 건물이 섞여 있었다. 가다 보니 가게 앞에 큰 데크와 파라솔 테이블이 놓인 멕시칸 음식점이 보였다.

‘Twisted Taco.’

구글로 검색해보니 맛집으로 평이 좋았다. 식당에 들어가 주문했다. 오랜만에 제대로 된 멕시코 요리를 먹게 된다고 생각하니 입에 침이 고였다. 브리또 1개, 퀘사디아 1개, 타코 3개를 주문했다. 음식이 나오는 동안 우리는 자리를 잡았다.

데크가 보이는 창가 쪽에는 높은 의자와 함께 사용하는 톨 테이블, 즉 높은 식탁들이 놓여 있었다. 내가 휠체어를 톨 테이블 쪽으로 몰고 가자 종업원의 눈이 동그래졌다. 이 선생과 권 연구원은 창가 쪽 높은 의자에 올라앉았다. 나는 전동휠체어를 테이블 가까이 접근시켰다.

그리고 내 휠체어 조이스틱에 있는 시트 기능키 중 ‘시트 올림’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높은 탁자와 같은 높이에 있던 내 얼굴이 탁자 위로 쭉 올라갔다. 내 휠체어의 시트가 톨 체어와 같은 높이가 된 것이다.

바 쪽에서 이 장면을 지켜보던 직원이 미소를 지었다. 나도 웃으며 손을 들어 보였다. 오랜만에 밥알과 고기, 삶은 콩이 들어간 브리또를 먹었다.

‘음, 그래. 이 맛이야.’

유학 시절 학교 앞에 있던, 멕시칸이 직접 운영하던 오리지널 멕시칸 식당의 그 브리또 맛이 떠올랐다. 오랜만에 먹는 정통 브리또의 맛이 여행의 피로를 녹여주었다.

CRT, 편의가 아니라 독립적 삶의 기술

복합재활기술은 단순히 편의를 위한 장비가 아니다.

중증장애인에게 그것은 자세를 바꾸고, 사람들과 같은 눈높이에서 식사하고, 다시 사회 속으로 들어가게 하는 삶의 기술이다.

내가 타고 있는 Permobil M3 전동휠체어는 스웨덴 제품이다. 미국에서도 가장 인기 있는 제품 중 하나다. 이 휠체어에는 앉은 시트가 위로 올라가는 ‘시트 올림’ 기능, 침대처럼 누울 수 있도록 하는 ‘시트 틸팅’ 기능, ‘등판 젖히기’ 기능, ‘발판 올리기’ 기능 등 네 가지 주요 시트 변형 기능이 있다.

이렇게 기능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다양한 고급 기술이 들어간다는 뜻이고, 가격도 올라갈 수밖에 없다. 이러한 장애인 보조기기를 복합재활기술, 즉 CRT(Complex Rehabilitation Technology)라고 부른다.

김종배 교수가 연세대에서 강원도RISE 사업으로 개발 중인 한국형 CRT 전동휠체어의 다양한 시트 기능 모습. 사진=김종배 교수 제공
김종배 교수가 연세대에서 강원도RISE 사업으로 개발 중인 한국형 CRT 전동휠체어의 다양한 시트 기능 모습. 사진=김종배 교수 제공

한국에서 이 휠체어 가격은 작년에 2,800만 원이었다. 보건복지부 지원으로는 꿈도 꾸기 어려웠다. 다행히 고용노동부 산하 장애인고용공단의 보조공학기기 지급사업에 어렵게 선정되어 2,000만 원을 지원받았다. 보증보험료를 포함해 본인 부담 1,000만 원을 내고서야 구매할 수 있었다.

미국에 있을 때는 이보다 더 비싼, 서 있는 자세까지 가능한 스탠딩 기능이 있는 휠체어도 의료보험에서 본인부담금 0원으로 지원받을 수 있었다. 미국의 공적 의료보험인 메디케어와 메디케이드, 또는 민간보험은 장애인의 건강과 독립적인 삶을 위해 의료적으로 필요하다고 인정되면 가격과 관계없이 필요한 장비를 지급한다.

그렇다. 이러한 장비들은 비쌀 수밖에 없다. 그러나 특수 컨트롤러, 맞춤형 시트, 다양한 시트 옵션 등 CRT 보조기기는 필요한 중증장애인에게 전액 지원되어야 한다. 그들에게 CRT 보조기기는 단순한 편의 장비가 아니라 생명과도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의료보험제도는 세계적으로 훌륭한 제도로 인정받는 측면이 있음에도, 보조기기 지원 심사 기준에서는 여전히 의료적 필요성보다 정해진 지급 상한액이 더 크게 작동한다. 전동휠체어의 지급 기준 금액은 209만 원에서 350만 원으로, 약 25년 만에 지난해 처음 올랐다.

그러나 일반 전동휠체어조차 이 가격에 맞춰 만들 수 있는 곳은 중국 업체나 중국 부품을 수입해 조립하는 국내 몇몇 영세업체 정도에 불과하다. 결국 한국의 장애인들은 품질이 낮고 시트 기능이 거의 없는 제품을 사용할 수밖에 없고, 이 분야 산업 역시 발전하기 어렵다.

오랜 시간 바른 자세로 앉아 있다가 필요할 때 자세를 뒤로 젖히거나, 누운 자세로 잠시 쉬는 일. 높은 톨 테이블에서 지인들과 같은 눈높이로 음식과 음료를 즐기는 일. 이런 일들이 한국의 장애인에게는 여전히 사치처럼 여겨진다.

대한민국은 이제 선진국의 반열에 들어섰다고 말한다. 그러나 장애인의 일상과 보조기기 지원 현실만 놓고 보면, 그 삶의 조건은 여전히 후진적 수준에 머물러 있다.